[뉴스레터] 함께 읽는 영화: 이승원 감독 <세자매>
2021-02-03 11:00:00


2021-02-03

??언니, 우리는 왜 이럴까?
[함께 읽는 영화] 이승원 감독 <세자매>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저희 뉴스레터에 새로운 코너가 생겼습니다.??? 영화계 안팎의 필자들과 함께 전주와 인연이 깊은 영화를 꼼꼼히?읽어보자는 취지의 비정기 코너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분들과 풍성한 이야기 준비해서 찾아뵙겠습니다.?

새 코너의 첫 번째 영화로는 지난 1월 27일 개봉한 이승원 감독의 <세자매>를 골랐습니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2020 선정작으로 정식 개봉 전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폴링인전주?VIP 시사에서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문소리·김선영·장윤주 배우의 열연으로 화제에 오르는 등 많은 분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 개봉 첫날부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순항 중입니다.?

이 놀라운 작품의 리뷰를! 영화계에서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아는 사람! 이화정 기자님이 맡았습니다.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의 시선으로 읽는 <세자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의 시선으로 읽는 <세자매>??

의문에서 출발하는 영화

<세자매>는 하나의 ‘의문’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흑백의 화면 속 내복 차림으로 달리는 아이들의 뒷모습. 아이들은 왜 밤거리를 달리고 있는 걸까.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전, 아이의 뒷모습은 다 큰 여자들의 뒷모습으로 이어진다. 둘 사이의 연결 고리는 무엇일까. 의문을 푸는 대신 카메라는 자매 관계인 세 여자들의 일상을 쫓느라 이내 분주해진다.?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첫째 희숙은 암으로 곧 죽을 처지다. 반항기 가득한 딸(김가희)과의 관계는 어긋난 지 오래고, 남편(김의성)은 가끔 들러 돈을 뜯어 간다. 셋째 미옥(장윤주)은 희곡을 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매사 폭력적이다. 과일 유통업자인 남편(현봉식)과 전처의 아들과 살고 있는데, 부부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아 보인다. 교회 집사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둘째 미연(문소리)은 자매 중 가장 그럴 듯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광교 S클라스 52평 아파트’에 입주했으며 교수 남편(조한철)과 자녀까지 뒀다. 하지만 미연의 삶도 허울뿐, 남편의 외도로 그녀가 지켜 온 일상의 균형은 깨진다.?


자매라 이름 붙었지만 셋에겐 공통점이 거의 없다. 시작부터, 각각의 뒷모습을 쫓아간 카메라는 각각의 영역에 열중하는 자매의 일상을 보여주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셋이 함께 만나는 일도 좀체 없어 보인다. 행여 둘만의 만남이 이루어져도 상황은 매끄럽지 못하다. 오랜만에 만난 희숙은 미연이 자신의 꽃가게에 이전까지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다는 걸 상기시키며, 미연은 자신이 활동하는 교회로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온 요란한 행색의 미옥이 마뜩잖다. 소원한 이들의 관계를 이어 주는 끈은 사실 그들의 현재라기보다는, 불쑥불쑥 덤벼 오는 과거의 기억이다. 미옥은 질문한다. “다섯 살 때인가, 되게 추운 겨울날 맨발로 언니랑 나랑 집 앞 슈퍼로 뛰어나갔”던 게 ‘왜’였는지.?

미연은 “기억이 없다”고 에둘러 말한다. 대답은 간결한데 그 간결함에는 불편한 질문을 서둘러 회피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매끄럽지 못한 이 질문과 답 뒤에 숨어 있는 건, 세 자매가 유년기에 함께 겪어 온 가정 폭력이라는 사건이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은 플래시백 장면. 흑백 화면을 통해 영화가 소환하려고 애쓰는 것은 결국 그들이 평생을 잊으려, 밀어내려 애썼던 상처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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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매>의 자매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밉상이거나 기괴하거나 이상하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이 입버릇이 된 희숙, 자신을 ‘병신’ ‘쓰레기’라고 지칭하며 알코올에 의지하는 미옥, 그리고 신앙을 일상을 통제할 구실로 삼는 미연. 유난스런 세 여자의 습성은 결국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제가 아니었을까. 유년기 단 한 명의 어른으로부터도, 심지어 (마찬가지로 폭력에 길들여졌을) 엄마에게서조차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한 아이들.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을 피해 속옷 차림으로 도망치고 내달리던 흑백 화면 속 아이들 그대로, 세 여성은 자라는 동안 평생 자신이 처한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려 여전히 숨 가쁘게 달리고 있었다.?


어려운 질문에 쉽게 답하지 않는 미덕

이들 자매는 이승원 감독의 전작 속 거칠고 처절한 인물들과 꼭 닮아 보인다. 가학적 성행위로 가족을 잃은 고통을 풀어 보려는 <소통과 거짓말>(2015)의 여자와 남자, 사지가 뒤틀린 아픈 동생을 두고 벗어나고 싶은 유년기를 공유하는 <해피뻐스데이>(2016)의 가족들. 얼핏 르포 프로그램에 소개될 충격적이고 선정적인 스토리라인 같기도, 막장 드라마의 작가적 변주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승원 감독이 돌아보고자 하는 것은 분노의 배출구가 자신이 된 사람들이다. 모두 소통 대신 거짓말을, 치유 대신 욕설과 자기 학대를 답습하는 인물들이다. 상처와 상처가 부딪히는 자리엔 항상 이상 행동과 소동극이 벌어진다. 여기에는 단순히 충격과 선정을 뛰어넘는 아픔이 동반된다.?

그렇기에 <세자매>에서 감정의 밀도가 최고로 짙어지는 지점은, 시종 분주한 움직임 가운데 카메라가 굳세게 버텨 잡아내는 침묵의 순간이다. 희숙은 자신의 몸에 직접 고통을 가하고, 울분을 해소하지 못한 미연은 문 밖으로 어떠한 소리도 새 나가지 않을 만큼 겹겹이 베개를 쌓은 후에야 풀지 못한 분노를 터뜨린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치부, 스스로 고통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독하게도 영화는 이들이 가장 아끼는 딸들에게 이를 들키게 함으로써, 그들의 곪은 상처를 보여준다.?


성인이 된 여자와 플래시백 속의 소녀는 같은 인물이면서도 각자를 회피한 채 화해하지 못하고 살아왔었다. 뒷모습에서 시작된 아이의 얼굴이 드러나고 사건의 정황이 밝혀지는 건, 여러 번 제시된 이 플래시백의 자매 중 누구의 것인지 밝혀지는 후반부가 되어서다. 매일 아침 “아버지를 빼고 우리 가족 모두가 죽어 있게 해달라”고 기도밖에 할 수 없었던 아이가, 모든 걸 ‘내 잘못’이라고 여기며 참고 살았던 여성이 이제는 나약해졌다는 이유로, 회개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은 가해자를 향해 “사과하세요!”라고 요구하는 그 절정의 지점까지, 카메라는 속력을 더하고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그렇게 ‘소통’에 이상 증세를 보이고, ‘거짓’으로 자신을 살아가고 있는 자매들을 통해, “그 시절엔 다들 그랬으니까”라는 말로 폭력의 역사를 치부해 버리지 말라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는 이 용감하고 소중한 영화의 도착을 가능하게 한 공신이다. 본능적이고 풍부한 표현을 가진 김선영의 연기와 자로 잰 듯 한 치 오차 없이 감정을 조율하는 문소리의 연기. 상반된 두 배우의 스타일을 한꺼번에 보는 건 선물 같은 체험이다. 이 배우들이 보여주는 경지는 단순히 연기에 머물지 않고 여성 서사의 퀄리티를 높여주고, 길을 열어준다. <베테랑>(2015)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장윤주는 본격적으로 배우의 면모를 보여준다. 거친 가운데 독특한 웃음과 매력으로 한국영화에 전무후무한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 2020’ 선정작,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 초청작인 <세자매>는 <여배우는 오늘도>(2017)로 연출에도 재능을 보인 문소리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앞선 두 편의 연출로 자신의 색을 보여준 이승원 감독이 문제의식은 잃지 않은 채, 좀더 대중과 가까이 다가갈 소통의 방법을 찾았다는 데 있어, 이들의 협업이 의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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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영화 저널리스트)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주간지 <씨네21> 등에서 일했다.
현재 전주국제영화제 팟캐스트 ‘이화정의 전주가오디오’를 진행하고 있으며,
영화 유튜브 채널 ‘무비건조’에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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