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별난 영화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 전진수·문석·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한 차례 영화제를 치룬 전진수·문석·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지난해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며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영화 제작 환경의 어려움을 짚으면서도 세 프로그래머는 "그렇기에 더더욱, 작은 영화들과 관객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며 영화제의 의미를 되새겼다. 올해 지원작들의 경향부터 <스페셜 포커스: 코로나, 뉴노멀>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 등의 신설된 부문까지, 4월 29일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만난 세 프로그래머와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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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코로나 펜데믹으로 변동이 많은 상황 속에서 영화제를 치렀다. 프로그래머로서 제21회 영화제를 평가한다면.
문석 국내 큰 규모의 영화제로서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경우였다. 무관객, 비공개 영화제로 개최하는 등 변동이 커서 스텝들이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온라인 상영과 같은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자평한다.
전진수 한국 감독들이 스크린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걸 깨달았다. OTT가 보편화됐지만, 감독들을 위해 영화제를 필수적으로 개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성경 지난해 온라인상영, 심사상영, 장기상영 등 온갖 종류의 상영을 다 해봤다. 그런 경험 덕에 덜 헤매고 개최 기간을 다시 10일로 줄이는 선택도 하게 됐다. 방역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올해도 온오프라인 병행해 개최하는데 이에 대한 감독들의 반응은 어땠나.
전진수 지난해는 온라인 상영에 대한 설득이 필요했지만 올해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이 줄었다. 이미 온라인으로 개최된 해외 영화제들을 다수 경험해왔기 때문인 듯하다.
문석 올해는 작년보다 50여 편 더 많은 141편을 온라인으로 상영한다. 오프라인 영화제에 오지 못하는 관객을 위한 좋은 시스템이라 생각해서 코로나 상황이 나아진 후에도 온라인 상영을 고려해 볼 계획이다.
올해 지원작 수는 한국경쟁 1129편, 국제경쟁 398편으로 작년보다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을 감안하면 선방한 결과로 보이는데.
전진수 동의한다. 국제 경쟁의 경우 작품의 퀄리티도 코로나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신인들도 계속 배출되고 영화도 만들어지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문성경 <영화보다 낯선> 섹션에서는 <말을 타는 모습을 보여주는 36가지 방법은 없다> <10월의 울림> 등 실험적인 형식의 재밌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현실을 찍지 않아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재기발랄함이 돋보였다.
문석 코로나로 인해 전처럼 활력이 돌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어떻게 영화를 찍고, 또 코로나의 풍경이 영화 속에 어떻게 침투해 들어올지가 관건이다.
올해 국제 경쟁, 한국 경쟁 지원작들의 경향은 어떤가.
전진수 사적인 이야기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가 많았다. 국제 경쟁의 경우 남미와 유럽 출신 감독들의 도전 의식, 시도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문성경 여성감독들의 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 국제경쟁 중 6개 영화가 여성 감독의 작품이다. 사회이슈로 폭넓게 이야기를 확대하려는 노력들도 엿보였다.
문석 작년부터 시작된 여성 이슈의 바람에 더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건드리는 영화들이 늘었다. 성소수자나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 등, 기존 작품들에서 보기 어려웠던 주제를 다룬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올해는 <스페셜 포커스: 코로나, 뉴노멀> 특별전이 신설됐다.
문석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관련 영화가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코로나 팬데믹이 막 시작된 상황을 배경으로 노환과 싸우는 할머니와 가족의 삶을 다룬 <방주>, 코로나로 도시가 봉쇄된 후, 한 바에서 세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자비로운 밤> 등, 코로나가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든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 영화들 중심으로 해당 섹션을 꾸렸다. 예술가들이 코로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고민하고 있는지 확인 가능할 것이다. 내년과 내후년 작품에 코로나가 반영되는 상황이 다를 텐데 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별전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에 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린다.
문성경 몇 년 전 해외의 한 영화제에서 소문이 도는 작품이 있었다. <검은집>이란 제목의 작품이었는데 왜 지금까지 이 영화를 몰랐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해당 감독에 대한 조사를 해나가면서 이렇게 한 시대를 새로 연 여성 감독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다룬 적이 없고 연구도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시대의 정점을 찍은 감독과 작품들에 주목해보자는 취지로 만든 특별전이다.
마찬가지로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부문도 신설됐다. 감독 겸 배우 류현경이 첫 번째 프로그래머로 선정돼 작품들을 골랐다고.
문석 기존 프로그래머가 아닌 다른 분야 인물의 눈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영화를 선정하고 소개하려는 목표로 만들었다. 올해 전주영화제가 프로그램 중 하나인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에 신경을 기울인 만큼 여성 영화인이 올해의 프로그래머가 되기를 바랐고, 류현경이 그에 적임자라 생각한다. 그가 선정한 장편 4편, 단편 4편을 상영한 뒤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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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대면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영화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진수 지난해 감독들의 반응을 보고 영화제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젊은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상영하고 관객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갈망이 큰데, 실상 그들이 그런 기회를 얻기 어렵지 않나.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큰 영화는 대기업에서 제작·배급을 이어가겠지만, 작은 영화는 점점 설 땅이 사라질 것이다. 때문에 영화제는 그들에게 중요한 시작점이 되어준다. 특히 전주 영화제는 제작지원 프로젝트가 잘 되어있는 영화제다. 작품을 인큐베이팅하는 과정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점이 감독들이 전주영화제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신인 감독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과정을 더 섬세하게 만들어가는 게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문석 작년 전주영화제 한국 경쟁 작품들이 여섯 작품이나 개봉했다.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이런 영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영화제가 없었다면 그런 상황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OTT와 영화제를 통해 볼 수 있는 컨텐츠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같은 온라인 환경에서 볼지라도, 다른 콘텐츠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보다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문성경 올해 작품들을 선정하며 느낀 건, 콘텐츠는 확장됐으나 주목받는 영화는 소수에 그친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하셨듯 작은 영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실정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처럼 대가도 작은 영화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예산은 적더라도 예술적 야망은 큰, 작고 별난 상상력을 가진 작품들을 더 많이 개발해야 한다. 그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영화제다. 더 작고 다양한 영화들의 별난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제 역시 무사히 안전하게 잘 개최될 수 있길 바란다.
전주 프로그래머 3인의 추천작
전진수 <재단사 니코스> <재즈 카페 베이시> <조셉>
문석 <검열> <가족의 투시도> <노회찬, 6411>
문성경 <아웃사이드 노이즈> <비센타> <동양의 마녀들>
글 조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