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희수의 흔적을 따라가는 동시에 지워내는
2021-05-02 10:00:00

희수의 흔적을 따라가는 동시에 지워내는

<희수> 감정원 감독

희수(공민정)는 공장 노동자다. 영화 <희수>는 그가 강원도 도경리역에 도착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은 희수가 자신의 일터인 대구의 한 염색 공장에 출근하는 풍경으로 점프한다. 학선(강길우)은 그의 연인이자 동료다. 희수와 학선은 계획했던 강원도 여행을 연기하려고 한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따로 또 같이 여행을 떠나는 사연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거창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대사가 거의 없다. 오히려 이야기는 대구와 강원도 두 공간을 수시로 교차되고, 이들의 사연은 퍼즐처럼 쉽게 짜 맞춰지지 않는다. 특히 배우 공민정이 연기한 희수가 살아온 삶의 잔상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감정원 감독은 “영화는 세상을 배우는 창 같은 건데 지금은 창을 통과하는 과정을 겪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며 “내가 좋아하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돼 얼떨결 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고 첫 장편을 만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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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된 영화다. 영화의 제목이자 공민정씨가 연기한 주인공 이름인 희수는 가장 친한 친구 이름에서 따왔다. 중학교 때부터 줄곧 친구였는데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들을 지켜보면서 언젠가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친구가 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나.

집안의 가장이라 일만 했고, 그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일만 하다가 죽을 것 같고, 죽어서도 계속 일할 것 같은 친구가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감정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는 희수뿐만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는 거창한 사건이 일어나기보다는 희수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는데 더 공을 들인다.

그래서 공간의 정서를 담아내는 게 중요했다. 이야기의 배경이 대구와 강원도다. 희수가 일하는 공장은 대구의 염색 공단에 있는 곳이다. 로케이션을 섭외하고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장과 대비되는 공간을 찾은 게 강원도 묵호다. 묵호는 관광지 느낌이 나지 않는 동네다.

희수가 일하는 대구의 염색 공단은 어떤 곳인가.

대구 시민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만큼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질적인 곳이다. 영화에도 등장하듯이 수증기와 연기가 자욱하고 매캐한 염색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노동자와 산업 재해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고민하게 됐다.

로케이션을 섭외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갔을 때 어떤 풍경이 인상적이었나.

직감적으로 기계가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상이 공장의 풍경들이 차례로 지나가는 오프닝 시퀀스에 반영됐다. 영화에서 희수가 일하는 곳은 실제 공장이 아니라 공단에 있는 연구소다. 그곳은 염색 공장보다 건물이 크고 깔끔하다. 실제 공장은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연기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고,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엄청나게 시끄러워서 로케이션 허락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염색 공단을 포기할 수 없었고, 연구소로도 노동자들의 일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 같아 촬영 허락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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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가 생애 첫 여행을 떠나는 곳이 강원도인데.

내가 대구 사람이라 강원도가 심리적으로 먼 곳처럼 느껴진다. 곧바로 갈 수 있는 기차 편은 무궁화호밖에 없어 무려 5시간이나 걸린다. 대구에 사는 사람이 멀리 여행을 간다고 하면 강원도고, 강원도 안에서도 관광지인 동네를 지나 조용한 작은 마을인 묵호가 이야기의 정서와 맞닿았다.

희수는 대사가 거의 없고 자신의 감정조차 잘 드러내지 않는다.

희수를 잘 보여주기보다는 희수의 흔적을 따라가는 게 중요했다. 동시에 희수의 흔적들을 지워나가면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걸 영화로 표현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공민정 씨의 어떤 점이 희수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나.

공민정 씨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씩씩하고 발랄하며 솔직한 데다가 독립적인 인물을 주로 맡지 않았나. 실제로 그를 만나보니 그가 가진 정서가 희수와 되게 닮았다고 생각했다. 최창환 촬영 감독님의 소개로 제주도에서 공민정 씨를 처음 만났는데 보는 순간 영화 속 희수처럼 단발머리였다. 그 자리에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출연을 부탁드렸다.

희수의 연인인 학선은 강길우 씨가 연기했는데.

<한강에게>(2018) <정말 먼 곳>(2020) 등 전작을 보면 강길우 씨는 서사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역할을 주로 맡지 않으셨나. 공민정 씨를 캐스팅한 뒤 희수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동료로 보일 수 있는 인물이 누굴까 했을 때 큰 고민 없이 강길우 씨를 떠올렸다. 학선은 많이 등장하지 않고 대사가 거의 없는데도 강길우 씨께서 선뜻 출연해주셔서 감사하다. 현장에서 공민정, 강길우 두 분이 저를 편안하게 해주셨고, 덕분에 저만 잘하면 됐다. (웃음)

산업 재해가 일어나는 영화의 중반부 장면은 카메라가 가만히 지켜보는 까닭에 더 섬뜩해 보였다.

카메라가 멈춰서 사고를 끝까지 지켜보지만, 사고가 그대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공장에서 벌어지는 사고를 잘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죽음이 일상에서 벌어졌고, 그건 회사만의 문제도, 사람의 실수도 아니라 말 그대로 사고이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로케이션 헌팅하러 가서 그곳을 처음 봤을 때 기계가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다는 느낌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친구 생각이 많이 났나.

친구 생각을 계속하면서 영화를 찍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마음이 내내 괴로웠다. (전주에 초대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올 것 같다. <희수>를 보러 오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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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다큐멘터리에도 관심이 생겨 대구 재개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사라져가는 공간과 인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 갔고, 일본에서 일본 영화를 많이 챙겨보면서 어떻게 하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구에 있는 영화 만들기 워크숍을 찾아가 독립영화를 만들게 됐다.

단편 영화 <신세계>는 어떤 작품인가.

첫 단편 영화인데 대구가 배경이고 노년층에 대한 이야기다. 일상 속의 판타지를 다룬 작품이다.

다음 작품은 구상하고 있나.

여러 아이템이 있긴 한데 일단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말을 많이 할 자신이 없어서…나는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니 블랙코미디가 적당하지 않나 싶다. (웃음)

글 김성훈·사진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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