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의 어떤 선택
: CGV아트하우스상 창작지원상, 왓챠가 주목한 장편 수상작 <낫아웃> 이정곤 감독
<낫아웃>은 신명고의 4번 타자인 광호(정재광)가 프로야구 드래프트 선발전에 탈락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느 성장영화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광호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질 때쯤, 가짜 휘발유 판매업이란 범죄가 섞여든다. 대학에 진학해 야구를 계속하려는 광호에게 팀 코치가 뒷돈을 요구하면서 광호가 급하게 자금을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꿈을 위해 범죄를 택한 19살 아이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강렬한 질문을 던진 이정곤 감독은 첫 장편 <낫아웃>으로 전주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 ‘왓챠가 주목한 장편’, ‘한국경쟁 배우상(정재광)’ 등 3관왕에 올랐다. 이정곤 감독은 “아내 안주영 감독에게 정말 고맙고, 창작지원상이 차기작을 응원하는 상인 만큼 앞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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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하나. 영화 전반에 야구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더라.
굉장히 좋아한다. 한창 빠졌을 땐 하루에 9시간씩 야구를 봤다. (웃음) 야구 심판 교육을 받아서 사회인 야구 시합 심판을 본 경험도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낫아웃>의 출발점이 된 건가.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즐겁겠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도 함께 다뤄보고 싶었다. 20대에 영화를 시작하면서 무척 행복했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필연적으로 따라오더라. 고교야구선수들의 삶을 통해 그런 고민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야구와 가짜 휘발유 판매업이란 소재의 조합이 독특하다.
군대에 갔을 때 선임 중 한 명이 사회에서 가짜 휘발유 판매를 했다고 하더라. 당시 그 이야기를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다. 나중에 내가 왜 그렇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였나 생각해봤더니,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 가장 어린 사람들의 범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청소년인 광호가 선택할 수 있는 불법적인 행위들을 고려해보다 그렇게 연결이 됐다.
광호의 나이를 19살로 설정한 이유도 있을까.
성장영화를 보면 나이대도 그렇지만 상황적으로도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이 많지 않나. 20살이 되면서 전공이 생기고, 그에 따라 가야 할 길의 방향성도 생기고. 인물의 선택과 동반되는 삶의 변화를 그리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독립영화에선 인물을 수동적으로 그릴 때가 많은데, 광호는 되도록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책임을 지는 능동적인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광호 주변의 10대들도 눈에 띄었다. 20살을 기점으로 미래가 갈리는 고교야구팀 선수들과 가짜 휘발유를 파는 아이들 등 그들의 상황을 짧게나마 전부 보여주려 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그중 한 친구가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게 됐고, 1교시부터 8교시까지 혼자 교실에 덩그러니 남아있던 기억이 오래 남았다. 그밖에 영화를 하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야구부원들을 통해 조금씩 다뤄보고 싶었다.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도 있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를 많이 떠올렸다. 여기서도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 선 주인공이 소년원을 들락날락하다 결국 감옥에 들어가며 생기는 일화를 다룬다. 그런 주인공의 상황을 참고했다.
광호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다. 야구 경기에서 승리하는 신 바로 뒤에 범죄를 저지르다가 경찰에게 쫓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광호의 명과 암을 처음부터 보여주고 시작하면 관객들이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싶었다. 또 광호가 휘발유 판매업에 뛰어드는 상황이 영화 중반부터 펼쳐지기 때문에 너무 갑작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았으면 해서 영화 초반에 짧게 보여줬다.
실기시험을 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데 개인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광호의 상황이 압축적으로 드러났다.
시나리오상으론 그 신이 6~7줄 내외의 짧은 지문에 불과하다. 마지막 문장에 광호가 ‘나는 여기서 합격할 수 없겠구나’하고 속으로 좌절하는 걸 적어 놨다. 이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찍을 수 있을지 촬영 감독님과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여러 의견을 나눴다. 핸드헬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어디서 패닝을 할지 등 촬영 계획을 세부적으로 세웠지만, 기본적으로 정재광 배우의 연기에 많은 부분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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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광 배우는 어떻게 섭외하게 됐나.
2015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졸업 작품을 준비할 때, 동기의 작품 <수난이대>를 통해 처음 만났다. 정재광 배우의 연기가 뇌리에 강하게 남더라. 이후 광호 역에 정재광 배우를 염두에 두고 <낫아웃>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작 지원을 받게 됐을 때, ‘정재광 배우를 생각하며 쓴 시나리오’라고 정중히 원고를 전달했다.
배우 정재광의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나.
뭐랄까, 처음 봤을 때부터 정재광씨만의 뜨거운 매력이 있었다. 야구 선수 역에 제격일 것 같았다. 그의 강렬한 느낌을 더 살리고 싶어서 전신 태닝, 삭발 등을 요청했다. 준비 기간이 넉넉지 못했는데도 정재광씨가 몸의 태, 분위기, 눈빛 등을 완벽히 만들어왔다. 그 뒤론 믿고 맡겼다.
야구를 하고픈 광호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한편, 가짜 휘발유를 판매하겠다는 선택을 완벽히 옹호하긴 어려웠다.
관객들이 그런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광호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이냐 묻는다면, 결국 19살 아이의 간절함 때문이라 답할 것이다. 많은 청소년이 19살에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엘리트 스포츠 선수는 그 선택에 따른 낙차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초등학생 때부터 인생의 전부를 걸고 운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평생의 꿈이 좌절됐을 때, 여건도 따라주지 않고 주변에 좋은 어른도 없는 19살 아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나 될까. 광호를 온전히 지지하고 응원하긴 어렵겠지만 광호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길 바랐다.
광호의 미래도 생각해본 적 있나.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반드시 지키자고 생각한 게 딱 하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호의 야구는 계속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광호가 보란 듯이 야구로 성공해서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 믿음이 영화의 제목에도 반영이 된 것 같다.
맞다. 야구에서 아웃이라는 말은 ‘타자가 죽었다’는 의미로 쓰인다. 광호의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로 제목을 <낫아웃>이라 지었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어릴 때 영화에게서 위로를 받는 순간이 많았다. 대학 시절 디자인을 공부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도, 나 역시 그런 위로를 건네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베넷 밀러, 자크 우디아르 감독의 작품처럼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영화적인 재미를 절대 놓치지 않는 영화를 좋아한다. 나 역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글 조현나·사진 최성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