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JU IFF #1호 [인터뷰]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지역 밀착도 높이고 축제성 되살린다
이준동 집행위원장이 전주영화제의 안살림을 도맡은 것이 올해로 3년차, 그사이 전주를 비롯한 전세계 영화제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오프라인 영화제의 의미와 필요성을 자문했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투했다. “참고 사례 없음의 나날들” 속에서 영화제 개최를 지속한 행보 뒤편에는 영화 제작자로서 길러둔 변수와 궂은일에 대한 이준동 집행위원장의 담력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위협에도 불구, 관객과 창작자의 안전한 대면 만남을 모색하는 한편 OTT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상영의 활로를 개척했던 전주영화제는 올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축제의 정상화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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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년간 팬데믹은 물론 OTT 플랫폼의 대두로 영화, 그리고 영화 제가 맞닥뜨린 위기를 최전선에서 겪었다.
그게 전주영화제의 운명이고 나의 운명인 것 같다. 임명된 지 9일 후에 바이러스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 정신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요즘은 ‘다른 분이 아니라 차라리 내가 당해서 다행이 다’ 싶은 생각도 든다. 영화 제작 현장이라는 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이지 않나. 변수에 대한 마음의 준비, 플랜B를 계획하는 것은 체질화되어 있다. 팬데믹 속에서 영화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 밀어붙여본 것 같다.
올해 초 오미크론이 계속 확산세였는데 영화제 준비는 어떻게 했나.
조례에서 지역 축제로 묶여 있지 않은 영화제는 소관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가 가급적 행사를 허가해주는 방향이라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런데 전주영화제는 지역 축제로 지정돼 있어 행정안전부 (이하 행안부)의 집회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올해 행안부가 300인 이상 집회를 허가한 사례가 단 한건도 없었다. 이 때문에 물밑으로 많은 씨름이 있었다. 3월에 열린 이란과의 축구 시합(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만 해도 관중이 꽉 들어차지 않았나. 거기서는 고함도 지르는데 극장에선 대화를 하지도 않고 음식을 먹지도 않으니 오히려 더 안전하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웃음) 행안부가 결국 전향적으로 허가를 결정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영화제가 열린다. 관객 및 외부 방문자 수가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완전히 새로운 대응책이 필요하겠다.
전과 달리 제로코비드는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 대신 확진자가 생겼을 때 빠르고 적절하게 격리 및 치료하는 대응 체계를 강화할 예정이다. 해외 게스트가 확진될 시 격리 시설 등을 충분히 마련함과 동시에 이에 맞는 이동편도 확보한 상태다. 국내 게스트나 관객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국가 방역 체계 지침을 따르면 되고, 위급 상황이나 중증이 발현될 시를 대비해 전주 예수병원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 다. 영화제 내부에 방역대책반을 만들어 도상 시뮬레이션을 하는 등충분한 매뉴얼을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올해도 온라인 상영을 유지한다. 온라인 상영 역시 3년차를 맞이했는데 어떤 이점이 있다고 보나.
온라인 관객수는 2020년에 약 9천명, 2021년에 약 1만8천명으로 집계됐다. 영화제를 온라인으로 맞는다는 것이 이전까진 무척 낯선 문화였는데도 관객이 빠르게 적응하고 있음을 느꼈다. 어떤 이유로든 영화제 방문이 어려운 관객, 또 티켓 예매에 실패한 관객의 수요가 있다는 확신이 섰다. 영화제 후반부에 수상작이 발표되면 이 화제성을 바로 흡수하는 온라인 상영 지표도 관찰된다. 오프라인 상영 보완 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무료로 열리는 골목 상영은 지역 주민이 영화제의 분위기를 좀더 가까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지역 상인들도 반긴다고 들었다.
집행위원장으로서 의지를 갖고 시도해보고 싶은 부분이었다. <시네마 천국>처럼 담벼락에서 영화가 상영되면 동네 주민들이 영화제 영화에 대한 어려움이나 거부감 없이 친근하게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전주영화제는 작가주의 작품에 주목하고, 사회에 날카로운 질문을 하거나 예술성을 담보한 작품을 발굴하는 정체성이 있지만 동시에 영화제가 가진 축제의 기능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전주 만이 가진 공간의 경쟁력도 있다. 한국의 구도심이 갖고 있는 아늑하고 편안한 동네 공간의 느낌이 우리 영화제가 가진 장소성의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의 밀착성을 높여갈 필요를 느낀다.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 섹션에서 미공개 단편 <심장소리>, 이창동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 <이창동: 아이러니의 예술>을 처음 선보인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 개봉 시기를 제외하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길 그다지 즐기는 감독이 아닌데, 동생인 집행위원장의 입김으로 해석해도 될까. (웃음)
영화제를 위해 힘 좀 보태달라, 뭐 그런 설득을 한 건 사실이다. 또 알랭 마자르 감독이 제작한 <이창동: 아이러니의 예술>은 내가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작품이니 집행위원장이자 제작자로서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쓴 셈이다. (웃음) 이창동 감독은 역시나 많이 주저하면서도 올해 영화제의 의미에 공감하고 나서주었다.
축제와 소통의 장으로서 올해 영화제에 대한 집행위원장의 바람과 기대는 무엇인가.
흔한 말이지만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되찾는 기회이길 바란다. 전주 영화제가 추구하는 성찰과 실험의 정체성이 관객이 잊고 지냈던 일상성을 되돌아보는 계기와 잘 맞아떨어지리라 생각한다. 또 여러 가지 사회·정치적인 상황에서 낙담한 분들이 있다면 이곳에 와서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
제작자로서의 근황도 궁금하다. 2년 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자기 잘못이 아닌데 곤경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린다”고 말한 적 있다. 아직 유효한가.
유효하다. 이제 나이도 만만치 않고, 할 만큼 해봤고, 그런데도 왜 힘들게 계속 영화 프로듀서 일을 붙잡고 있느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거기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나의 역할이랄 것이 있다면 그런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를 한편이라도 더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술 마시는 게 훨씬 좋다.
요즘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여전히 영화 여러 편을 개발 중인데, 원래 영화로 준비하던 것을 시리즈물로 바꾸는 작업도 하고 있다. 내 직업은 영화 제작자이고 위원 장은 단기 임시직일 뿐이다. (웃음) 그러니 정해진 기간 동안 소임을 충실히 할 뿐이다. 아직도 어디 가서 소개할 때 집행위원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내놓기가 어색할 때도 있다.
[글·김소미, 사진·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