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인터뷰: <경아의 딸> 김정은 감독, 디지털 성폭력을 맞닥뜨린 모녀의 입장
2022-04-29 10:00:00

JEONJU IFF #2호 [인터뷰] <경아의 딸> 김정은 감독, 디지털 성폭력을 맞닥뜨린 모녀의 입장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는 경아(김정영)는 독립한 딸 연수(하윤경)가 늘 걱정이다. 어리게만 느껴지는 연수가 혹여 다치지는 않을지 남자친구를 만나 사고를 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다. 그런 경아의 기우가 현실이 된 것일까. 어느 날 연수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닥친다. 집요하게 재회를 요구하던 전 남자친구가 둘만의 은밀한 영상을 인터넷상에 유포한 것. 타인의 눈빛이 두려워진 연수의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연수와 경아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긴다.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논의는 공론화 되었지만 피해자의 일상 회복은 여전히 요원하다. 김정은 감독은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다루면서도 모녀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피해자의 회복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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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를 다시 찾았다. 노량진의 임용고시생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청춘을 돌아본 단편 <우리가 택한 이 별>(2015),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함께 하며 우정을 쌓아간 두 여성의 이야기 <야간근무>(2017)에 이어 세 번째 방문이다. 소감은.

장편영화로는 첫 방문이라 매우 떨린다. 단편영화로 전주를 찾았을 때는 코로나19 이전이어서 영화제를 편안한 마음으로 즐겼다. 관객과의 대화(GV) 때도 다른 감독님들과 함께여서 괜찮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롯이 혼자서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라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설렘 반 두려움 반이랄까.

첫 장편영화다. 단편영화 제작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

이전에 만들었던 단편들도 단편치고는 긴 분량이었다. 그런데도 장편영화는 촬영 회차가 증가하는 만큼 부담도 더해졌다. 특히 단편은 소규모로 학교 동기나 후배들과 제작했는데, 장편은 외부 스탭들과 소통하는 과정도 필수적이었다. 밤샘 작업이 아닌 12시간 촬영 시간 엄수도 쉽지 않았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장편을 만들고서는 크나큰 문턱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경아의 딸>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어떻게 되나.

N번방 사건이나 그 이전의 웹하드 카르텔 사건을 보면 사적인 영상이 불법 사이트에서 사고 팔리는 문제가 있었지 않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기도 했고. 나도 그 부분에 있어서 큰 충격을 받고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다 2018년도 말부터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써보자 싶었다. 그 무렵에는 여대생인 주인공이 피해로 고통을 받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무거운 이야기로 설정했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상투적이고 유사한 소재의 영화들과 큰 차별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연수라면 영상이 유포됐을 때 가장 마주하기 두려운 대상은 누구일지 생각하다 엄마의 존재를 떠올리게 됐다. 어떻게 보면 나와 가장 가깝고, 나를 잘 이해해 줄 것 같은 존재가 엄마인데 왜 엄마를 가장 두려운 대상으로 떠올렸을까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며 떠올랐다. 그 답을 찾는 과정이 <경아의 딸> 이야기로 발전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모녀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점이 흥미롭다.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성폭력 등 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실제 피해자의 사례를 많이 여쭤봤다. 일례로 직접적인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받기도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2차 가해가 빈번히 발생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또 이러한 일화를 영화화할 때 스테레오 타입화된 피해자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묘사하지 말고, 본인에게 실제로 사건이 닥쳤다면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 생각해서 쓰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나와 내 어머니의 관계에서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대사를 쓴 후에는 또래 여성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경아의 행동과 연수의 수동적인 태도를 공감할 수 있는지 질문하며 대본을 수정해갔다. 사회로부터 강요되는 순결주의와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갖게 되는 어떤 죄책감을 시나리오에 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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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딸>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피해자인 연수만이 아니라 엄마인 경아의 서사에도 눈길이 간다. 연수의 회복을 돕는 여성 인물간 연대도.

경아는 딸 연수를 주체적인 인물로 보지 않고 자신에게 소속된 어떤 객체로 바라보는 부분이 있다. 그 점을 제목에 함축했다. 그리고 모녀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조금 더 확장해서 말해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교사인 연수는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가치관이나 경험을 물려줄 수 있는 위치에 선 인물이다. 그런 연수가 사건 이후 한 여고생과 만나게 되는 장면은 어떤 가치관을 단절하고 세상과 다시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연수와 다음 세대인 여고생의 관계를 통해서 관객들이 조금은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기를 바랐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영화 <고백> 등으로 얼굴을 알린 하윤경 배우가 연수 역을, 독립영화계의 베테랑 김정영 배우가 경아 역을 맡았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는지.

연수 역할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 20대 여성 배우 중에 좋은 분들이 많으니까 캐스팅이 빠르게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야기 자체가 어둡다 보니 선뜻 선택하기 꺼리는 부분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다 하윤경 배우와 만나게 됐다. 대본을 보고서 공감이 되는 내용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했다고 하셨다. 김정영 배우는 연수보다 먼저 캐스팅됐다. 일전에 김정영 배우의 작품 <아워바디>(2018)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어 대본을 전해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경아와 연수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며 특히 주의를 기울인 부분은 무엇인가.

경아는 자칫 밉게 보일 수 있는 인물이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전사가 있으면서도 자신이 경험한 아픔을 다시 딸에게 대물림하는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 과잉될 수도 있었는데, 김정영 배우와 상의해서 완급조절을 하려 노력했다. 연수의 경우에는 피해의 모습을 대상화해서 그리지 않으려 했다. 이 지점에 대해서 하윤경 배우 역시 동의해주었다. 피해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순간이 있지만 어떨 때는 또 예능 프로를 보며 웃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다시 움츠러들고 또다시 다른 일을 해내기 위해 시도하고. 피해자의 일상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된다. 관객분들이 그러한 연수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

앞으로 더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단편 때부터 자전적인 경험이나 개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사회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영화가 경직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다. 다음 영화는 조금은 자유롭고 밝은 작품,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이제까지 모녀 이야기는 많이 다루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존재를 소외시킨 부분이 있었던 듯하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글·정예인, 사진·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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