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인터뷰: <폭로> 홍용호 감독, 법정 미스테리에 녹여낸 사랑 이야기
2022-05-06 14:32:00

JeonjuIFF #9호 [인터뷰] <폭로> 홍용호 감독, 법정 미스테리에 녹여낸 사랑 이야기

코와 입이 본드로 막힌 채 잔혹하게 살해된 남성. 그 유력한 용의자로 사망한 남성의 아내 성윤아(유다인)가 체포된다. 남편 앞으로 든 보험이 동기로 제시되고, 살해 계획을 적은 다이어리가 증거로 제출되며 사건은 평이하게 마무리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국선변호사 이정민(강민혁)이 윤아의 변호를 맡으며 사건은 급전직하한다. 정직한 눈빛을 지닌 정민이 윤아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게 어떤 건지, 그 사건을 만나기 전까진 알지 못했다.” 영화 초반부에 흘러나오는 정민의 내레이션이 은근슬쩍 일러주는 사건의 전말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반전과 함께 밝혀진다. 범인(凡人)의 편견에 실낱같은 균열을 내는 작품. <폭로>의 홍용호 감독을 만나 영화 제작의 비하인드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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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출신이라 들었다. 영화 연출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변호사 출신이고, 지금도 변호사인 상태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아니었다. 주변에 영화하는 분들이 있었고 그들을 보며 어느 순간 나도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전문사 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을 시작하게 됐다.

한 노동자의 유무죄를 판결하는 내용의 전작 단편 <배심원들>에서도, 이번 작품에서도 법조계를 그리고 있다.

내가 잘 아는 분야에서 소재를 찾게 된 측면이 있다. <배심원들>의 경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모티브로 해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연출하게 됐다. 이번 작품은 첫 장편인 만큼 익숙한 이야기로 쓰고 싶었다. 재판 과정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것만큼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전이 중요한 작품이다.

물론 스포일러나 사전 정보 없이 작품을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포일러에 대해 그렇게 민감한 편은 아니다. 반전을 알고 본다면 극의 초반에 나타나는 배우들의 감정적인 변화를 처음부터 더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폭로>를 “법정 미스터리라는 외피를 쓴 사랑 영화”로 소개했다.

한 여성 판사에 관한 짧은 기사를 읽은 게 시나리오 집필의 계기가 됐다. <폭로>는 재판 과정을 다룬 법정 스릴러 내지 법정 미스터리의 장르적 관습을 따른 작품이다. 그것이 영화의 외피라면, 내용적 측면에서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 애정이 가는 부분은 미스터리 속에 숨어 있는 사랑 이야기다.

이번 작품을 구상하면서 특히 주의를 기울였던 부분은 무엇인가.

작품 속에 퀴어 코드가 있기 때문에 관련 법조인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구했다. 또 주인공이 여자인 만큼 내가 잘못 묘사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른 여성 영화인에게 시나리오 검토를 부탁하기도 했다.

독립영화부터 드라마까지 종횡무진 중인 유다인 배우, 드라마로 대중의 곁을 자주 찾은 강민혁 배우, 극단 차이무 단원으로 연극계에서 활약 중인 공상아 배우를 캐스팅했다.

유다인 배우야 워낙 좋은 배우로 알고 있었고,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호의적으로 반응해줘 가장 먼저 캐스팅할 수 있었다. 공상아 배우는 영화 <씨, 베토벤>에서 맡았던 역할의 센 이미지가 판사 역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다만 최은주 역이 판사면서도 부드러운 면을 지닌 캐릭터라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니 작품에서와는 달리 상냥한 인상이어서 좋았다. 강민혁 배우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차분한 정민 역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전작에서는 차갑거나 귀여운 역할을 맡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외모나 분위기가 솔직하고 열정적인 정민 역에 딱이었다.

사건의 중심에 선 성윤아, 성윤아의 국선변호인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정민, 성윤아 사건의 부장판사 최은주. 법정물 특성상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다 보니 캐릭터를 구상할 때 고민이 많았을 듯한데.

성윤아의 경우에는 가정폭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지점에 대해 해명해야 했다. 어떤 여성은 피해를 당했을 때 곧바로 뛰쳐나올 수 있다. 하지만 성윤아는 가스라이팅을 동반한 협박으로 인해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었고, 그 이유를 제대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다. 최은주의 경우, 타인의 사건을 판결하는 판사가 자신이 연루된 사건을 맞닥뜨릴 때 어떤 곤경에 처하고 마는 측면은 놓치지 않고 그리고 싶었다. 이정민은 구상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폭로>의 중심 서사는 성윤아의 이야기다.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하면서도 주인공인 정민의 존재감이 흐려지지 않도록 밸런스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정민의 내레이션을 삽입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정민의 과거와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그려낼 예정이었지만, 후반작업 과정에서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 삭제했다. 그러니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젊은 변호사인 정민의 성격을 담백하게 그릴 수 있었다.

하바나가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 왜 하바나인가.

성윤아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장소가 하바나다. 그녀에게 하바나는 세상에서 가장 먼 곳처럼 감각된다. 과거에는 쿠바의 하바나에 여행을 갈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하바나는 실제로 향하기 어렵지만, 자유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어떤 공간이라는 은유다. 사실 하바나에 관한 후일담이 있다. 시나리오상에는 있지만 삭제된 신 중에 성윤아가 실제로 하바나로 향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대부도 해수욕장에서 석양이 지는 매직아워 때를 기다려 촬영도 했는데, 편집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전체적인 색채와 어우러지지 않아 삭제했다. 배우들도 즐거워했고,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온 신이라 아쉬움이 컸다.

전작인 단편 <더 멋진 인생을 위해>에서는 예수상이 두 주인공을 보듬는 듯한 이미지가 사용됐다. <폭로>에서도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말라”는 성경의 문구를 활용했다. 종교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종교적 측면에서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폭로>에서는 어떤 입장에서 보더라도 포용할 수 있는, 순수한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리기 위해 성경을 들여왔다. <더 멋진 인생을 위해>의 경우에는 달빛 아래 예수상 앞에서 트램펄린을 뛰는 두 사람으로부터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을 드러내고자 했다. 순수한 이들의 사랑과 이를 포용하는 어떤 존재를 이미지화하고 싶었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글·정예인, 사진·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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