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1 인터뷰: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2023-04-27 09:00:00

민성욱·정준호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영화제의 주인공은 영화, 한층 풍성하게 꾸려간다

전주영화제가 파격적인 인사를 감행했다. 지난해 12월26일 배우 정준호와 민성욱 전주영화제 부집 행위원장을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입명하며 조직을 재편한 것이다. 이번 선임에 대해 배우 권해효를 포함한 영화인 3인은 이사회 사퇴 의사를 밝히는등 영화제 안팎으로 잡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영화제 개최를 2주 앞두고 만난 민성욱, 정준호 전주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은 최근 논란이 불거진 이유를 일부 수긍하면서도 영화제의 생존 가능성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공동집행위원장 체제의 이점과 그들이 기대하는 성과에 대해 하나씩 설명 했다.

- 두분이 원래 알던 사이라고 들었다.

정준호 원래 친분이 있던 민성욱 집행위원장님의 친구, 선후배 분들이 있었다. 주변에 민성욱 집행위원장님과 가까운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주 못 봐도 많이 교류한 것 같은 관계였다. (웃음)

민성욱 성문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중 유정훈 메리크리스마스 대표, 정태성 전 CJ ENM 영화사업부문 대표 등 이후 영화 일을 하게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정태성 전 대표는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와 중학교 때 동창이라 자주 함께 어울렸는데 그때 정준호 집 행위원장 얘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 봤던 건 제1회 전주영화제 때 임창재 감독의 <하얀 방>을 찍으러 전주에 내려온 정 배우와 식사 자리를 했을 때였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잘 이끌어주셔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동기인 배우 배종옥 씨에게 이런저런 얘기도 전해 들었다.

-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 <삼사라>가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 영화제) 인카운터스 부문에 초청받아 두분이 함께 영화제도 참석했다.

민성욱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처음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삼사라> 공동제작자 입장에서 영화제를 방문해 현지에서 많은 관계자 분들을 소개받고 작품 교류에 대해 이야기했다. 해외 게스트들도 참석하는 한국영화의 밤 파티 때 정준호 위원장님이 밝은 조명 아래에서 모든 카메라의 관심을 받던 풍경이 기억난다. (웃음) 예전에는 사진 한장 제대로 찍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 위원장님 덕분에 홍보 효과가 확실했다.

정준호 다들 나를 앞으로 밀어넣고 뒤쪽에 서셔서…. (웃음) 베를 린영화제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주영화제와 가는 길이 비슷하다. 예전에 여행으로 방문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다. 분단의 아픔이 아직 남아 있으면서 예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도시다. 영화제도 비즈니스다. 국제영화제의 퀄리티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집행위원장, 프로그래머는 물론 해외영화팀장과 같은 실무자들이 함께 방문해 돈독한 네트워크를 쌓고 영화제간 ‘기브 앤드 테이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영화제 전체적인 예산도 지금보다 더 많이 확보되어야 한다. 또 화장터 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풍경도 봤다. 베를린처럼 전주도 다소 독특한 장소에서 영화를 선보이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민성욱 카를로 카트리안 베를린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과 마크 페란슨 수석 프로그래머는 원래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 계셨던 분이다. 내가 부집행위원장을 하던 당시 전주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적도 있다. 덕분에 이번 베를린영화제와 수월하게 협력할 수 있었다. 카를로 카트리안 공동집행위원장에게 어떻게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을 초청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몇년 동안 신뢰를 쌓고 공을 들인 후에 얻은 결실이라고 하더라. 전주영화제도 네트워크를 점점 강화 해서 중장기적인 계획을 구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로 전주영화제가 재편된 후 첫 영화제 개최를 앞두고 있는 소회는 어떤가. 서로 다른 경력을 쌓아온 만큼 영화제에서 맡은 역할도 분담되어 있을 듯한데 그에 대한 얘기도 듣고 싶다.

정준호 국제영화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게스트들도 맞이하는 축제다. 마치 집안의 큰 경사를 치르는 것 같다. 영화라는 자식의 결혼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으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영화제가 직접 제작한 영화는 딸, 해외에서 출품된 작품은 사위라고나 할까. (웃음) 집행위원장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일이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업무에 빨리 적응했다.

민성욱 전체적인 영화제 계획 수립, 프로그래밍 방향 설정, 개폐막작 및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 같은 작업은 집행부 전체가 함께하고 있다. 정 위원장님이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은 대외 협력과 스폰서 유치 그리고 홍보 활동이다. 정 위원장님이 역대 집행위원장 중 최대 예산을 확보해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발전기금이 바닥나고 예산 자체가 적게 책정된 상황에서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크를 통해 억대의 스폰서를 유치하고 정부와 계속 소통하고 있다. 반면 나는 조직 관리와 같은 안방 살림을 맡고 있다.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는 사업으로 치면 동업을 하는 기업 이다. 내가 할 일은 영화제를 찾는 분들이 편안히 즐기다가 가실 수있도록 편의와 혜택을 제공하고 서포트하는 것이다. 최근 K열풍 덕분에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가 격상되면서 문화 콘텐츠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특히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면서그 나라의 문화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때문에 정부가 국제영화제 예산을 좀더 지원한다면 대한민국의 문화 콘텐츠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장이 될 거라고 많은 분들을 만나 설득하고 있다. 대체로 영화인들이 누군가를 찾아가 부탁한다는 일이 쉽지 않은데, 개인적으로 사업가로서도 살아왔고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필드에서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최근 여러 기업인들을 미팅했고 지금까지 50여명의 후원자들을 찾았다. 독립영화는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기업인들은 문화가 발전하고 성숙하는 데 일조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 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은 전주영화제 사무국장, 부집행위원장을 거쳐 이번에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됐다. 과거 영화제의 경험이 올해 영화제를 이끄는 데 든든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민성욱 백제예술대학교 교수로 있던 당시 영화제 준비를 위한 공청회에 참여했는데, 갑자기 전주영화제 첫 개최를 반년 앞두고 사무 국장직을 제안받았다. 당시 오석근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장에게 연락을 취해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최민 초대 조직위원장이 그만두고 민병록 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임명됐을 때 다시 사무국장을 하게 됐고, 이후엔 백암아트홀 대표이사를 하며 영화와 연관된 콘서트나 뮤지컬을 만들거나 미국 코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초빙교수로 다녀왔다. 그러다 고석만 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임명 당시 영화제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내게 다시 SOS 요청이 들어 왔다. 그때부터 이충직 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준동 전 전주영 화제 집행위원장 등 역대 위원장들을 모두 부집행위원장으로서 보좌 하게 됐다. 신임 집행위원장으로서 내가 옆에서 지켜봤던 역대 집행 위원장들의 장점을 잘 취하고 아쉬운 점을 보완해나가면서 영화제를 꾸려나가고 싶다.

-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임명 건을 두고 어떠한 인연에서 성사된 인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준호 그동안 영화제는 게스트로 참석했다. 혹은 사정상 방문하지 못하더라도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마음속으로 영화제를 응원해왔다. 전주시에서 전주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축제다운 축제로 나아가기 위해 발이 넓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정준호씨 같은 분이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판단했다더라. 내가 독립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며 목소리를 내온 배우라면 공동집행위원장에 임명됐을 때박수를 받았을 수도 있는데 상업영화에 주로 나왔던 내가 영화제 색깔과 잘 맞을지 걱정한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나 역시 똑같이 반응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이견이 쏟아지고 언론 에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할 때 100번은 그만두고 싶었다. 영화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함께하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불거지니 주변에서도 반응이 갈리더라. 왜 굳이 시끄러운 일에 뛰어드느냐는 사람도 있었고, 발이 넓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는 분들도 있었다. 만약 역량이 부족해서 집행위원장을 그만두더라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해보는 게 나를 선임해준 분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 무거운 결정을 내렸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전주시 전역으로 영화제 공간을 확장하는 것은 관객 동선에 불편함을 줄수 있다. 전주 독립영화의 집 건립 때문에 전주돔을 활용하지 못하는 과도기에 이같은 운영 전략이 오히려 적합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준호 전주시를 돌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영화의 거리에서 10~20분 떨어진 곳만 해도 상인들이 영화제는 자신들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거리 부근만 사람이 북적대고 배우들은 오지도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라도 솔선수범해서 꼭 오겠다고, 서울에서 온 손님들도 이곳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웃음) 전주 시민들이 함께하는 축제가 되려면 되도록 영화제가 분산돼 열려야 한다. 그래야 많은 소상공인들이 축제를 체감할 수 있다.

- 올해도 온라인 상영을 병행한다.

민성욱 온라인 상영을 병행하면 관객수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영화제 기간에 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물리적으로 최대 30편 정도다. 영화제가 끝난 뒤에 온라인 상영을 통해 놓쳤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면 이는 오히려 오프라인 영화제를 보완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고 이를 기술적으로 막을 수도 없다. 극장 배급 가능성이 있는 장편영화는 올해 온라인 상영에서 제외한다. 감독의 동의를 받은 한국 단편영화에 한해 온라인 상영을 병행한다.

정준호 몇년 만에 대한항공 스폰서를 다시 받게 됐다. 해외 귀빈 초청 티켓 지원을 받는 대신 전주영화제는 저작권을 갖고 있는 작품 들을 기내에서 상영할 수 있게끔 협조한다.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 되면서 생기는 이점과 문제점을 적절히 조화시켜나가야 할 것 같다.

- 4년 만의 영화제 정상화를 맞이해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위기를 전주시에 조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오프라인 행사는 어떻게 준비 중인가.

민성욱 영화제의 주인공은 영화다.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과 관객 과의 대화 자리를 중점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야외 버스킹 같은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열고 잘해왔다. 올해는 무성영화에 라이브 음악 공연이 곁들여진 소니마주 공연을 열 예정 이다.

정준호 게스트 초청을 위해 많은 동료들에게 연락하다가 전주영 화제는 전주만의 색깔이 있기 때문에 상영작과 무관하게 참여하기 에는 다소 부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부산국제영화제는 상대적으로 배우들이 편한 마음으로 방문한다. 전주영화제 하면 왠지 어렵게 생각하는 선입견을 하나씩 극복해나가야 할 것 같다. 물론 전주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시네필들이 기다리는 영화들을 상영한다는 원래 명맥은 지켜져야 한다. 올해 영화제 슬로건이 ‘우리는늘 선을 넘지’(Beyond the Frame)다. 전주영화제도 지역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프로그래밍 면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주목한다면 그것이 기존의 선을 넘고 영화제를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영화제를 사랑하는 분들의 질책을 받아들이면서 이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전주 시민들의 염원도 함께 이루어주면서 보다 풍성한 축제로 나아가고 싶다.

- 다르덴 형제의 첫 내한이 성사돼 화제를 모았다. 전주영화제는 예전부터 다르덴 형제의 과거 다큐멘터리까지 상영할 만큼 깊은 애정을 보여준 곳이었는데, 이번 개막작 초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민성욱 사실 2020년 <소년 아메드>를 상영하면서 다르덴 형제 특별전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이창동 감독님과 대담까지 확정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무산됐다. 앤데믹 상황에 접어들고 하늘길이 재개되면서 다르덴 형제를 다시 초청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지난해 가을 일찌감치 내한을 확정했다

-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상영작을 한편만 꼽는다면.

민성욱 사실 집행위원장이 경쟁부문 상영작을 한편만 꼽는다는건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웃음) 경쟁부문 외에 상영작을 한편 고르자면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 <삼사라>를 언급하고 싶다.

정준호 나도 <삼사라>를 꼽겠다. 전주영화제가 직접 지원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식 같은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충격받았다. 이것도 영화라고 정의내릴 수 있나? 마치 어렸을 때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5~10분씩 전기가 나간 사고를 경험한 느낌이랄까.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죽었다 살아 돌아온 듯한 환영 같았다. 색다른 영화 세계를 체험했다.

정준호 이준동 전 집행위원장 시절에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런 영화에 투자하겠느냐”며 선택했다. 원래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 작은 전주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하는 것이 원칙인데, 3대 영화제의 경우 홍보 효과를 위해 예외적으로 상영을 허용한다. 베를린영화제첫 상영 당시 “이렇게 실험적인 영화에 투자 지원을 해준 전주영화제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감독이 언급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삼사라>가 심사위원특별상까지 받게 되면서 전주시네마프로젝트와 같은 지원 사업을 계속 이어가도 괜찮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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