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시대에 조응하는 영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지난해 인사 조정과 함께 무탈히 축제를 완주한 전주국제영화제가 민성욱·정준호 체제로 두 번째 영화제를 선보인다. 독립영화, 대안영화, 자주영화, 예술영화… 자연스럽게 자신의 색깔을 찾아 나서는 전주영화제는 어느 덧 개성 통통 넘치는 다양한 작품을 한 바구니에 그러모았다. 해맑은 웃음 소리와 이유 있는 설렘으로 가득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두 항해자에게 다소 진중한 질문을 건넸다. 민성욱, 정준호 공동위원장과 나눈 이야기다.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에 많은 우려가 오가던 것이 무색하게 벌써 두 번째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를 평가해 본다면.
민성욱 임용 과정에서 많은 걱정이 나올 수밖에 없던 이유를 십분 이해한다. 그래서 정준호 위원장과 영화제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서로의 강점을 잘 공략했다. 내가 영화제 전반의 절차를 관리하는 동안 정 위원장은 대외 협력과 홍보, 예산 협의, 협찬 쪽을 많이 신경 썼다. 실제로 기업을 방문하거나 의회를 갈 때 반응이 달라진다. 호의적인 시선과 환대에 전주영화제가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정준호 영화제 개최 5개월 남짓하여 취임하다 보니 내부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외부의 걱정되는 시선은 당연한 반응이다. 민성욱 위원장이 나를 1:1 전담마크해서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큰 실수 없이 영화제를 무탈하게 끝낼 수 있던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욕심 부려 축제에 새로운 색깔을 입히는 것보다 기존 정체성을 잘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올해 전주영화제엔 ‘다시 보다 25+50’ 프로그램에서 많은 영화인들이 참여하여 각 작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플란다스의 개> 배두나 배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류승완 감독, <사랑니> 정지우 감독, 김정은 배우, 의 김보통 작가까지. 섭외 과정에 집행위원장들의 공도 컸을 것 같은데.
민성욱 보통 유명인을 섭외하는 업무를 정준호 위원장에게 분배했을 거라 생각한다. 오랫동안 다양한 작품을 해오면서 아는 사람이 많다 보니 전화 한 통이면 다 해결될 것 같은가 보다.(웃음) 하지만 정 위원장이 해야 할 일들은 다른 영역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독립 영화와 대안 영화를 주목하는 전주영화제에서 너무 많은 셀럽들이 스포트라이트를 이끌면 그것도 그것 대로 독립 영화를 소외시키는 꼴이 돼버리고 만다.
정준호 식당을 찾으면 이제 영화제에 유명 연예인 많이 오는 거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웃음) 그래야 지역 활성화에 도움 된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영화제 정체성에 어울리는 영화인을 섭외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설명을 드리면 영화 한두 편이라도 보신 분들은 전주영화제와 선정작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바로 알더라.
민성욱 전주영화제 1회 때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이 개막작으로 올랐고 류승완 감독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전주영화제와 함께 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도 그렇다. 지금 이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당시엔 세상에 잘 알려지기 전이었다.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는 영화제로서 신인 감독과 배우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다. 더 이상 우리는 영화제와 관련 없는 유명 스타를 초대하려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아도, 잘 알려지지 않아도 더 기회가 필요한 사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시 보다 25+50> 프로그램을 통해 저명한 감독들의 초기작을 보면서 이 메시지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해외게스트도 탄탄하다. 1020 세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일본 미야케 쇼 감독은 개막작 <새벽의 모든>으로 전주를 찾고, <무소주>의 차이밍량 감독은 자신의 페르소나와 같은 이강생 배우와 함께 자리한다.
민성욱 영화제의 가장 큰 즐거움은 우리가 평소 쉽게 보지 못하는 해외 감독과 배우를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점 아닐까.(웃음) 그간 궁금했던 점들을 그들에게 직접 물어볼 소중한 기회가 주어진다. 적극적으로 영화 안팎을 오간 경험이 관객 문화를 더 활발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은 후보 작품 중 거의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 사실 <새벽의 모든>을 개막작으로 선택하기에 용기가 필요했다. 개막식은 한정된 시간 속에 진행된다. 영화를 상영한 이후에 이어지는 행사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90분 길이의 영화를 선택한다. 그런데 <새벽의 모든>은 120분이라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작품이 워낙 좋아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결정엔 후회하지 않는다.
-거리에서 열리는 골목상영회나 참여자들이 이강생 배우 특유의 느리게 걷기를 겨루는 <행자 퍼포먼스 콘테스트 '영화의 거리에서 행자되기'>까지 전주 거리 곳곳을 살린 프로그램들이 눈에 띤다.
정준호 아담한 골목과 소담한 풍경들이 전주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전주의 지역성과 특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프로그램들이다. 지난해에는 ‘맛의 도시’라는 수식어를 살려 영화 <자산어보>를 상영한 후 궁중 음식을 나눠먹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 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작품을 함께 보고 맛있는 식사를 나누는 순간은 언제나 행복하기 때문 아닐까. 영화라는 친숙한 매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앞으로도 전주만이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을 강조하고 싶다.
-전주영화제를 운영하며 궁극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장기간 목표가 있다면.
민성욱 단연 상연관 컨디션. 전주 시내 영화관 시설들이 열악하다는 것을 우리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CGV와 메가박스 모두 사기업이라 그들에게 영사기를 바꿔라, 램프를 바꿔라, 스피커를 바꿔라 요구할 수 없다. 한정된 예산을 쪼개 쓰는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모두 부담하기도, 사기업이 영화제만을 위해 수행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지금 <범죄도시4>가 무섭게 흥행 속도를 올리고 있지 않나. 그런 기간에 영화제에게 상영관을 내어주는 건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영화제에 상영권을 임대해주는 것이다. 이런 상영관을 위해, 지역 영화제를 위해, 나아가 지역 사회를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와 정부 부처들이 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선 방안을 내세워주면 좋겠다.
정준호 예산 관련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 처음부터 한꺼번에 바꾸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작게는 상영 기기부터 교체하거나, 한 관부터 확장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또 역량 있는 신인 배우와 감독들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해외 네트워크를 잘 다지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짧은 임기 기간으로 해외 영화제와 긴밀한 소통을 하지 못하면 위원장이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네트워크를 다져야 하는 상황이 반복 된다. 효율적인 홍보 마케팅을 위해 해외 영화제와 연결될 유능한 로비스트가 필요하다.
올해의 영화제 추천작
민성욱 <페페> 넬슨 카를로 감독의 작품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살된 하마 페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정준호 <스모킹 타이거스> 내가 출연한 독립영화인데 전주 영화제에 선정 된지 꿈에도 몰랐다. 이민자 세계의 상처와 이데올로기, 세대적 차이를 담담하게 그려 낸 작품이다. 셸리 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기반했으며 트레베카 영화제의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글 이자연/사진 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