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모든> 감독 미야케 쇼, "개인을 인정하는 사회, 거기서 시작하는 다정함”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이다. 월경증후군(PMS)으로 고통 받는 후지사와(가미시라이시 모네)와 공황장애를 앓는 야마조에(마쓰무라 호쿠토)는 충동적인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인사처럼 달고 산다. 서로의 결핍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둘은 전우이자 피신처로서 숨 쉴 틈을 내어준다. 16mm 카메라의 따뜻하고 뭉근한 온도를 유려하게 펼쳐내는 미야케 쇼 감독은 이제 막 관객과의 만남을 마치고 상기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평소보다 달뜬 그의 목소리에서 전주영화제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영화제의 얼굴이 되었는데.
너무 영광이다. 처음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랐다. 영화가 상영 되기 전까지 무척 불안했다. 화려한 엔터테인먼트 장치가 있는 작품도 아니고 보는 사람에 따라 선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개막 상영을 거치고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전해주셔서 안심했다. 오늘 관객과의 만남(GV)에서는 많은 관객의 강렬한 눈빛과 영화를 향한 진지한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다.
-각자의 결핍을 지닌 두 사람이 유일한 공감대를 찾아 서로 의지하는 플롯은 사실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럼에도 <새벽의 모든>이 지닌 차별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먼저 이 두 주인공에겐 연애 감정이 없다. 보통 서로를 공감하고 연민하다 보면 사랑이 싹트기 마련이지만 이 세계는 그런 방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또 누구도 나에 대한 이해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상 증상처럼 보이는 특이한 행동을 하지만 인물들은 그 여파를 책임질 뿐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는 월경증후군(PMS)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자와 공황장애를 앓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원작 소설에 증상이 잘 묘사돼 있지만 따로 자료조사를 하기도 했나.
중년 남성으로서 PMS 존재 자체를 처음 알았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로부터 고통 받고 있더라. 공황장애도 마찬가지로 그 전까지 자세히 몰랐다. 두 질환은 공통적으로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100명이 있으면 100가지 증상이 있다. 이런 지점 때문에 의사 선생님을 찾아 자문을 구했다. 무엇보다 PMS로 고통 받는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가미시라이시 모네 배우에게 어느 정도로 신체적 부하가 있는지 그 수준을 알 수 없었기에 더 명확하게 조사해야 했다.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또한 오가사와라 게이코의 자서전을 픽션으로 각색했다. 오리지널을 영화화하는 작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모험이다. 이 말은 창작자에게나 관객에게나 모두 적용된다. 내가 구현하지 않은 원작 세계를 영상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은 무척 어렵고 모험적이다. 그 과정에서 창작욕이 몹시 커진다. 또 관객들은 자신이 잘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느끼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새로운 것과 낯선 것. 미지의 세계. 그런 점에서 원작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것을 영상이라는 포맷으로 새롭게 접하면서 경험을 쌓게 된다. 이번 영화에도 그간 낯설었던 PMS와 공황장애를 또 다른 관점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새벽의 모든>은 미야케 쇼 감독이 원작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올린 상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상상에는 더 많은 여지가 있다. 누가 가만히 서있는 단순한 장면에서도 머리 스타일까지 세세하게 상상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것까지 결정해주는 게 영화다. 더 확정된 정보를 준다. 그래서 소설보다 지루하지 않을지 많이 걱정했다. 그때 이 고민을 불식시켜준 게 우리 주연 배우들이다. 이야기가 따분하거나 평면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인물들을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그려줬다. 서로가 생각을 최대한 일치시키기 위해 촬영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는 그런 말도 들었다. “말이 너무 많으시네요.”
-<새벽의 모든> 세계관의 사람들은 너그럽고 관대하다. 두 주인공의 충동적인 태도에도 비난하는 일이 거의 없고 그들의 사과를 언제든 받아준다. 그들의 질환을 약점 삼는 이도 없다.
내 생각이 말로 잘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나는 100%짜리 인간관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순도 100%를 목표 삼다 보면 비극이 발생한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에도 이 사람을 더 알고 싶은 이유는 내가 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걸 알고 나면 다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따뜻하고 다정한 관계들은 안정감을 주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 도움을 절실히 요청할 때 적절히 보탬이 되어주는 게 우리 사회에 진정 필요한 다정함일 것이다.
-내가 영화를 너무 이상적이고 순진하게 받아들인 걸까.(웃음)
그건 아니다. 일본에서도 개봉 이후 영화 속 마을 사회가 따뜻하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다만 현실은 그보다 더 냉랭하다는 거다. 영화와 현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 일본에는 최근 ‘우리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한다’는 문장의 슬로건이나 캐치 프레이즈가 자주 등장한다. 그 문장을 보다 보면 반감이 든다. 왜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하지? 우리 모두가 이렇게 다른데? 심지어 모두가 하나되는 과정에 실패하면 그건 개인의 책임이 된다. 그 사람이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체주의적 상상은 사람들의 개별성과 특수성에 맞춘 도움을 주지 못하게 한다. 모두가 똑같은 관계와 거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냥 때마다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과 관심을 주는 것이면 충분하다. 영화에도 그런 지점을 드러내고 싶었다. 사람들의 각자의 이유로 힘들어할 때 우리는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가. 마을 구성원들이 어떤 방향성을 택해야 하는가. 그렇게 나아가고 싶었다.
-야마조에는 불안할 때마다 탄산수를 마신다. 사실은 그 안에 보글보글 탄산 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 미야케 쇼 감독에게 탄산수와 같은 존재는 무엇인가.
정말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불안할 때 내가 뭐하지? 나는 불안하면 불안하지 않도록 더 많이 연습하고 공부한다. 너무 지루한 답변인가.(웃음) 다시 대답하고 싶다. 음.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날이면 그날 하루 종일 불편하지 않나. 그런 날엔 오전부터 엄청 강한 비트의 힙합을 듣는다. 음악 파워!
-16mm카메라와 빛의 활용.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은 미야케 쇼 특유의 연출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문득 궁금하다. 미야케 쇼 감독은 시그니처가 있는 감독이고 싶은 걸까.
전혀 아니다.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하고 싶다. 관객이 기대하는 것을 무너뜨리고 싶다. <새벽의 모든>에서는 전작들과 달리 대사와 내레이션이 길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려 한다.
[글 이자연 / 사진 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