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한숨과 함께 ‘1년 동안 돈 쓰지 않고 영국에서 살아남기’를 선언하며 시작한다. 특히 고프로를 목에 걸어 고정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프로젝트를 영상으로 찍어 하나의 기록물로 남길 결심을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영화의 오프닝 장면처럼 실제로 ‘0원 살이 프로젝트’ 역시 한숨에서 시작했다. 런던 직장에서 해고 당하고 당장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다른 직장을 구하기는커녕 침대에서 일어날 힘도 없을 만큼 무기력했다. 매일 아침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딱 2개월 치 생활비가 남아 있었다. 이 돈이 다 떨어지면 내 삶도 끝이라는 두려움에 숨이 막혔다. 침대에 누워 한숨만 쉬었다. 돈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숨이 돈으로 변하는 환상을 보았다.
“뭐야, 숨이 돈이야?
살아만 있겠다는데, 다른 것 안 하고 숨만 쉬며 살겠다는데 돈이 없으면 그것마저도 안 되는 거야? 내 인생이, 시간이, 존재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쓰이는 게 당연한 거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화가 나서 뭐든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먹고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라는 시스템의 세뇌를 와장창 깨부수기로. 나는 이 순간을 ‘웨이크업콜(Wake-Up Call)’이라고 부른다. 세뇌에서 깨어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맞이한 각성의 순간이었다. ‘돈 없이 사는 게 가능할까?’ 돈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해본 적 없으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1년간 돈을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든 생존해낼 것이라는 걸. 이 무모한 확신으로 나의 모든 생존 과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영화 제작에 아무 경험이 없던 내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돈 없이 살아보자!’라는 다짐과 동시에 충동적으로 일어난 결정이었다. 나의 생존 투쟁기를 세상과 공유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느꼈다. ‘어떻게 먹고살지’를 걱정하느라 두려움과 절망 속에 삶의 모든 가능성을 묻어버린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내가 한번 해볼게! 반드시 해낼게!”
영화가 진행되며 노동력 교환 네트워크, 자급자족 농장인 올드채플팜, 레인보우 게더링, 히피와의 만남 등 계획과 우연에 의한 여러 관계 맺음이 등장한다. 다양한 이들을 만나는 과정 안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에 대한 구상도 함께 이루어졌는가? 혹은 모든 여정을 끝낸 후 사후적으로 작업 구상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0원 살이 프로젝트는 영화 제작을 위한 기획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한 나약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 실험이었다. 어디로 갈지, 누구를 만나게 될지,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듯 영화에 대해서도 그 어떤 계획과 구상이 무의미했다. 나의 생존을 우연과 인연의 기적에 모조리 맡겨버린 것처럼 영화의 흐름도 그냥 하늘에 맡겼다. 여행하는 동안 영화에 대한 생각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 했다. 그저 모든 순간을 온전히 살아냈고, 그 진실한 삶 속에서 극적인 변화와 성장이 일어났다. 영화를 위해 내가 한 일이라곤 가급적 삶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성실하게 카메라를 켜놓은 것뿐이다. 뷰파인더도 없는 옛날 고프로 카메라였던 게 다행이었다. 영화 제작과 촬영 기법에 무지했던 것 역시 다행이었다. 영화에 대한 아무런 기대와 의도가 없었기에 여정이 알아서 흐르도록 두었고, 기적 같은 상황이 자연스레 흘러왔다. 삶 자체가 저절로 한 편의 영화가 된 셈이다. 0원으로 사는 게 가능할까? 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지금 생각해 보니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둘 다 무모하고 대책 없는 도전이었다. 어쩌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무지한 덕에 모두 가능했던 게 아닐까 한다. 무지로 시작한 무모한 도전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으로 나를 안내했다.
영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카메라의 위치 같다. 자전거 운전의 편의를 돕기 위해 카메라를 목에 걸고 시작하기에 관객은 감독의 가슴 높이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후 히치 하이킹을 해 두 손이 자유로울 때에도 이 시선은 달라지지 않는데, 이를 고수한 이유가 있을까?
프로젝트의 목적은 영화를 잘 만드는 게 아닌 삶을 잘 사는 것이었다. 얼마나 좋은 그림을 담느냐가 아닌 얼마나 온전하게 현재에 머무르는지가 중요했다. 따라서 최대한 촬영에 신경 쓰지 않고 여정을 기록할 수 있는 촬영법을 선택했다. 고프로를 가슴에 장착한 덕에 두 눈과 두 손발이 늘 자유로웠다. 카메라를 잡지 않고도, 뷰파인더를 쳐다보지 않고도, 가는 길을 멈추지 않고도 여정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심’하게 촬영한 덕에 삶에 ‘진심’일 수 있었다. 후에 눈이 아플 정도로 흔들림이 심한 촬영본을 보며 엄청난 ‘고심’을 해야 했지만... 하지만 아무리 대충 촬영한다 해도 어쨌든 녹화 버튼은 눌러야 한다. 감정적으로 극적인 순간에 녹화 버튼으로 손을 뻗는 게 참 내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하는 나의 진정성에 숱한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촬영하지 못한 중요한 순간들이 많다. 눈물이 마구 터져나오는데 그 모습을 스스로 촬영한다면 그건 진짜인가 거짓인가? 의도가 반영된 감정이라면 어차피 진심이 전달될 수 없을 테니 과감히 촬영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물론 여정의 중요한 변곡점과 극적인 상황들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 우려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갈등과 긴장 장면이 없는데 어떻게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미 지나간 상황과 영화 구성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어떻게 극적인 장면을 살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오늘 하루도 극적으로 살아남느냐가 더 절실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오늘의 생존을 위해선 카메라에 담지 못한 순간에 대한 미련 따위는 최대한 빨리 흘려보내야 했다.
카메라 위치 덕분에 영화는 대부분 핸드헬드로 촬영되었다. 흥미로운 건 영화 전반이 흔들림 속에서 유지되다 별다른 예고 없이 중간중간 우주 혹은 자연 경관이 정지 화면처럼 불쑥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묘하게 영화에 긴장감을 더하고 관객을 집중하게 만든다.
가슴에 고프로 카메라를 달고 2년간의 여정을 혼자서 직접 촬영했다. 따라서 촬영 구도는 단조롭고, 앵글은 불안정하며, 어지러울 정도로 영상이 흔들린다. 거친 영상 기법을 통해 험난한 인생의 길을 헤매는 인간의 불안한 마음 상태를 표현한 거라고 우기고 싶지만, 사실 ‘무심하게’ 촬영한 결과일 뿐이다. 의도한 연출이 아닌데 결과적으로 이 거친 날것의 느낌이 영화의 콘셉트가 됐다. 혼자서 여행하고, 삶을 경험하고, 촬영까지 하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순간에 몰입하느냐 순간을 카메라에 담느냐를 고민할 때가 많았는데, 중요한 순간일수록 나는 촬영 대신 몰입을 선택했다. 그 결과 나의 삶은 풍성해졌지만, 촬영 소스는 빈곤해졌다. 영화의 핵심적인 변곡점인데 그에 대한 촬영 소스가 없어서 편집할 때 무척 애를 많이 먹었다. 그중 한 예가 넵튠과의 대화다. 당시 나는 내면의 수많은 문제를 마주하며 존재에 대한 불안과 혼란을 겪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넵튠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려는데 카메라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촬영 대신 녹음을 했다. 이것도 영화에 쓰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넵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모르지만, 왠지 이 사람과의 대화를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정확했다. 나는 여정에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넵튠과의 대화를 듣고 또 들었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던 그의 말들을 어느샌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의 말이 가슴에 와닿을 때마다 삶의 모양도 선명해졌다. 넵튠은 내게 이정표 같은 존재가 되었다. 오디오만 있는 넵튠과의 대화를 영화에 쓸지 말지를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주인공 ‘정미’는 그의 연민과 지혜를 가슴으로 느꼈지만, 영화로 그것을 전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관객들이 넵튠과의 대화에 고요히 몰입하길 바랐다. 영화는 시각 중심의 영역이지만 때때로 시각적 이미지는 소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넵튠과의 대화만큼은 음성에 집중하도록 하고 싶었고, 그래서 적막과 같은 영상들을 사용했다. 모닥불, 대자연, 우주가 바로 그것이다. 불과 자연과 우주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지만 숨 막힐 정도로 적막하다. 안정을 주면서 동시에 긴장을 준다. 내면의 대화를 듣는 데 아주 적합한 소리가 되고, 내면의 세계를 탐험하는 데 완벽한 공간이 된다.
영화 사이사이 등장하는 라인 드로잉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여정에서 중요한 변곡점, 나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대전환의 시기가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해고 이후 ‘먹고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라는 시스템의 세뇌를 깨부수기로 결심하는 순간이고, 두 번째는 야생 생활을 통해 어머니 자연과의 연결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 세 번째는 이란에서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칼로 위협받은 후 두려움 속에 갇혀 있다가 다시 사랑의 믿음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이 세 번의 시기는 주인공의 세계가 시스템—자연—사랑으로 확장하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렇게나 중요한 순간들인데 안타깝게도 촬영 소스가 없다! 앞서 말했듯 나에겐 얼마나 좋은 그림을 담느냐가 아닌 얼마나 온전하게 현재에 머무르는지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세계관에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나는 과감히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후 편집 단계에서 이 과감한 선택을 수습해야 했다. 촬영 소스도 없고 글로 장황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면 무엇으로 내면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을까? 복잡한 내면세계의 문제일수록 추상적이고 심오한 표현보다는 단순한 그림이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유치할 정도로 단순한 그림을 그렸다(의도적으로 유치한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사실 내 그림 수준이 그 정도다). 세상을 거꾸로 보며 하늘 자전거를 타는 그림, 나무와 한 몸이 되는 그림, 두려움과 자유라는 갈림길에 선 그림을 그렸다. 이 단순한 그림들을 통해 관객들이 주인공의 내면세계의 변화를 더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속 당신의 여정은 어떤 짐작도 불가능하게 하는,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이는 이 여정이 우연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편집의 영향도 컸을 듯하다. 여행 기간을 생각했을 때 촬영 분량도 엄청났을 것 같은데. 많은 양의 촬영 소스를 어떠한 방향성 아래 편집해 나갔는지 궁금하다.
2년간의 0원 살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2016년에 한국에 돌아왔다. 그 후 몇 년 동안은 외장하드를 열어보지도 않았다. 엄청난 양의 촬영 소스를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편집 작업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영화 구성을 고민하는 대신 먼저 글을 쓰기로 했다. 강렬했던 이 여정을 나의 언어로 명료하게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긴 여행이었던 만큼 글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6년에 걸쳐 책을 완성했다. 6년 동안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새로운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여정 속 주인공의 성장을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현실의 나도 성장했고, 그제야 비로소 6년 전 경험한 낯선 세계를 나의 세계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책의 초고를 완성하고 나서야 외장하드를 열었다. 자연스럽게 영화의 구성이 그려졌다. 6년간의 책 작업은 영화 작업을 위한 편집 구성안을 만드는 시간이었던 듯하다. 책이 시스템—자연—사랑이라는 세계관의 확장에 따라 전개되듯 영화도 같은 흐름을 따른다. 3막 구성이 선명해지자 편집 작업을 시작했다. 3년간의 지난한 편집 과정 끝에 드디어 영화를 완성했다. ‘편집을 언제까지 끝내겠다!’라는 마음이었다면 아마 영화는 아직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매일매일 돌담을 쌓는 심정으로 한 컷 한 컷 편집했다. 돌담을 쌓을 땐 서두르면 안 된다. 돌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라야 하고 이렇게도 올렸다 저렇게도 올렸다 해야 하며, 담이 기운다 싶으면 과감하게 허물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담요를 입은 사람〉은 내가 10년 동안 돌담처럼 쌓아 올린 영화다. 처음 쌓아본 돌담이라 투박하고 삐뚤삐뚤하지만 모든 돌 하나하나에 정성과 진심이 배어 있다.
만약 관객이 이 영화에 깊게 몰입했다면 그건 당신이 여정 내내 ‘돈을 쓰지 않고 사는 삶'과 불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당신은 자본주의에 익숙한 도시 관객과 같은 눈높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러한 삶의 방식을 체화하게 된다. 영화에서 짐작해볼 순 있지만 이 같은 변화의 순간이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진 않는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주인공은 물리적 공간을 이동하면서 낯선 세상을 경험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마주한다. 동시에 이 영화는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는 영적 여정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존재 차원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모든 변화와 성장엔 늘 갈등과 충돌이 있다. 주인공은 낯선 세계관을 맞이하거나 자신의 숨겨진 내면세계를 마주할 때마다 큰 혼란과 불편함을 경험하고, 답을 찾고자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길 위 스승들’의 가치관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천천히 흡수한다. 주인공이 자신의 참된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을 때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2년의 여정에서 삶의 답을 찾은 게 아니다. 주인공은 평생 길을 찾아다녔다. 어쩌면 기억할 수 없는 멀고 먼 과거에도 같은 질문을 했고, 수만 번의 생애를 거치다 지금에서야 자신만의 답을 찾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특정한 하나의 사건과 계기로 주인공의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으므로 영화에도 그 과정을 자세히 묘사할 수 없었다.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 이 변화에는 전후의 구분이 없다. 경계 없는 연속성만 있을 뿐이다. 주인공의 변화 역시 이와 같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일어났다. 땅속의 씨앗이 적당한 온도와 습기와 양분을 만났을 때, 즉 때가 되었을 때 알아서 싹을 피우고 자라나듯이, 또한 어디까지가 씨앗이고 어디부터가 싹인지 분명한 경계를 찾을 수 없듯이, 주인공도 그렇게 조용히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도 변화 혹은 성장 중이다.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했고, 자신이 변한 줄도 모르게 변화했다. 이 소리 없는 변화 과정을 주인공보다 먼저 관객들이 알아차려 주길 바란다.
보트 시팅, 스킵 다이빙, 스큇팅 등 영화에는 돈 없이 자고 먹고 이동하는 방법이 연이어 등장한다. 한국에선 여전히 꽤 낯선 개념들이기도 한데, 영화를 통해 관객이 어떤 점을 보고 알게 되길 바라나.
0원 살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시스템의 세상에서 살았다. 시스템의 생존 법칙은 단 한 가지다. ‘성실하게 일하고 부지런히 소비할 것.’ 즉,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자에게만 생존을 보장한다는 말이다. 나는 시스템의 생존 법칙에 따라 노동—소비의 쳇바퀴를 열심히 굴렸다. 그러나 런던에서 해고 당하고 나의 쳇바퀴가 멈춰버리고 말았다. 시스템은 쳇바퀴를 굴리지 않는 사람에겐 그 어떤 생존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어떻게 먹고살지?’ 엄청난 생존 불안에 휩싸였다. ‘쓸모가 없어 버림받았다.’라는 존재의 위기도 느꼈다. 어떻게든 ‘안전한’ 시스템 안에 남아 있고자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썼다. 그것만이 생존과 사랑을 보장할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시스템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노동—소비 쳇바퀴의 시스템에서 나와 새로운 세계로 향하라는 호출을 받게 된다. 이것이 앞서 말한 ‘웨이크업콜’이다. ‘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먹고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시스템 밖에서 ‘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도시에서 낭비로 생존하는 법을 배웠고, 자연에선 자급자족으로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세계로 나와선 사람들의 연민과 관대함 덕에 생존했다. 또한 생존에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 자립 기술을 습득하면 돈과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돈을 위해서가 아닌 삶의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돈이 없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돈이 없음’은 나를 진짜 세계로 향하게 하는 날개가 되어 주었다. 관객들에게 내가 경험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는 무한한 가능성과 무조건적 사랑의 세계로 우리 모두의 삶이 확장되기를 소망한다.
〈담요를 입은 사람〉은 감독 본인의 개인사가 구체적을 기입된 매우 사적인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이 여정에서 우리는 환경 문제와 자본주의의 폐해, 성폭력, 난민 문제 등의 전 지구적인 사회 문제와 만난다. 사적인 여정을 경유해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것이 있다면?
〈담요를 입은 사람〉은 ‘어떻게 먹고살지?’라는 생존 욕구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생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세상의 문제와 어떻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화두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거창한 의도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프로젝트의 최초 목적은 오직 나의 생존이었다. 그런데 이 여정은 내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소비하지 않는 여정 속에서 주거 문제, 낭비 문제, 빈곤 문제, 환경 문제, 국경 문제, 난민 문제, 여성 문제 등을 마주하며 바깥세상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나의 내면세계의 문제를 끊임없이 발견했다. 그리고 세상의 문제와 내면의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 같다는 것을 알아챘다. 바로 ‘분리심’이다. 나와 타인, 나와 자연, 나와 다른 생명체, 나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분리해 바라보는 순간부터 고통과 파괴가 시작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연결’을 회복하고자 무모한 모험을 계속 이어 갔다. 2년간의 거친 여정 끝에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랑의 진리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삶의 괴로움과 세상의 고통을 치유할 힘이 바로 이 ‘연결’에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연결의 세상을 알기 전까지 나는 분리와 단절 속에 살았다. 그래서 나의 삶은 외롭고 괴로웠다. 지금 이 순간, 많은 사람이 내가 겪은 것과 같은 처절한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바로 경쟁과 불안, 기후 재앙과 생태계 파괴, 전쟁과 각종 분쟁의 원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랑의 진리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 연결의 세상에서는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고, 나와 당신이 하나이므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 경쟁할 필요도 없다. 빼앗을 필요도 없고 더 가질 필요도 없다. 나와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의 죽음이 무관하지 않고, 나와 바닷속 산호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으며 나와 당신, ‘우리’가 결코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것을 알아챈다면 전쟁과 폭력, 차별과 혐오, 갈등과 대립의 날이 조금은 무뎌질 것이다. 〈담요를 입은 사람〉은 모든 존재가 ‘하나’로 공생하는 세상을 꿈꾼다. 서로의 생존을 애처롭게 여기고 서로의 생명을 함께 돌보는 세상. 그 어떤 경계와 차별 없이 하나의 가족으로 사는 세상. 이 따뜻한 세상을 맞이하는 데 〈담요를 입은 사람〉이 한줄기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동일한 주제를 바탕으로 2022년에는 책 『0원으로 사는 삶』을 펴내기도 했다. 책과 영상 작업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나.
책 지면에는 한계가 없다(물론 출판사와 독자들은 얇은 책을 선호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아낌없이 글에 담았다. 그 결과 요즘의 에세이에서는 보기 힘든 두꺼운 벽돌 책이 탄생했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독자들은 책이 얼마나 두껍든, 읽는 데 며칠이 걸리든,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여정을 따라와 줄 것이다. 독자들에 대한 믿음으로 나는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낌없이 이야기를 토해냈다. 페이지 제한을 두지 않고 여정의 흐름에 따라 술술 글을 써나갔다.
그런데 영화 작업은 달랐다. 관객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길어야 2시간. 첫 가편집 영상의 러닝타임은 4시간이었다. 전문가들은 무조건 절반 이상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2년 동안 방문한 장소, 경험한 사건, 만난 인물, 깨달음과 배움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이것들이 구슬처럼 다 꿰어져야 이야기가 완성되는데! 어떻게 절반 이상을 줄이라는 건지 막막했지만 일단 과감하게 줄였다. 간신히 1시간 30분짜리 러프 컷을 완성했다. 그러자 이번엔 전문가들이 “장면에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컷을 줄이면서도 호흡을 위한 공간을 불어넣고, 핵심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면서도 관객들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하고, 안정감을 주면서도 리듬감을 넣어야 한다고! 아니, 이건 마치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차를 끓이라는 소리 아닌가! 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만 익숙했지, 영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차’를 만드는 비법을 찾아 헤매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2023 전주프로젝트 워크인프로그레스에 선정되었고, SJM문화재단에서 주최한 러프컷 내비게이팅과 퍼스트컷 완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국내외 영화 전문가들의 냉철한 코칭을 받으며,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차’를 끓이는 비법을 조금씩 전수받았다. 멘토였던 한 감독님이 이런 조언을 했다. 주인공과 감독이 같은 경우 ‘거리 두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인공 정미는 여정에서의 감동을 다 기억하지만, 감독 정미는 그 기억을 다 잊어야 한다고. 그래야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장면만을 영화에 담아낼 수 있다고 말이다. 이것이 책 작업과 영화 작업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한다. 글을 쓸 땐, 10년 전 정미에게 깊이 몰입해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생생하게 펼쳐놓아야 한다. 반면 영화를 만들 땐 10년 전 정미에게서 벗어나 오직 영상을 통해 새롭게 감정과 기억을 만들어야 한다. 이 조언을 늘 명심한 덕에 책 『0원으로 사는 삶』과는 또 다른 색다른 감동과 여운의 영화가 탄생했다. 독자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독자가 되어 다양한 감상을 교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