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러브> 감독 김오키, “모두가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나, 둘, 셋 러브>의 세계 속에서 사랑은 힘이 세다. 수정(류현경)이 여행하는 생경한 장소들에는 미미한 권력에 취한 채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수정과 수자(한양희)가 공유하는 단순한 사랑에의 믿음은 그들을 감화하기에 충분하다. 김오키 감독의 삶 속에서도 사랑의 영향력은 마찬가지다. 영화에 품은 오랜 연심은 결국 그를 영화제작의 길로 이끌었고, 그가 차린 촬영 현장은 동료들을 향한 깊은 애정을 발산하는 즐거움의 공간이 되었다. 코리안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알록달록한 장편 데뷔작 <하나, 둘, 셋 러브>의 감독이자 ‘전주씨네투어x음악’의 무대를 수놓을 뮤지션으로 전주를 찾은 멀티 아티스트 김오키에게 그의 창작을 이끄는 긍정적인 가치들에 관해 물었다.
-처음 영화 제작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는 어릴 적부터 있었다. 댄서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16mm 캠코더로 다양한 촬영에 도전하기도 했고. 하지만 음악을 시작하며 한동안 그 꿈을 잊고 지냈다. 그러던 중 내 음악 <코타르 증후군>의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아주기도 한 박세영 감독을 알게 되었다. 주변 지인 중에도 영화인이 많았던 만큼 자연스럽게 나도 한 번 찍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음악을 만들 때도 이미지와 스토리를 생각하는 편인데, 음악은 다소 추상적인 표현 방식이라는 한계가 있어 아쉬움을 느끼던 차였다. 영화는 이미지를 더 직설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 좋았다.
-박세영 감독의 단편영화 <Godspeed>에서는 음악감독도 맡고 연기도 도전하지 않았나. 그의 영화에서 발견되는 환상성을 머금은 소재와 몽환적인 색감 등이 당신의 작풍에서 언뜻 비치기도 한다. 둘의 주파수가 맞는 듯하다.
박세영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단편 <캐쉬백>을 보러 갔을 때였다. 나이가 되게 어린데도 재밌다. MZ 백현진이라고나 할까. (웃음) 영화 편집 기술도 박세영 감독에게 배웠고 처음 맥북도 그가 쓰던 걸 중고로 구매했고. 아,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이것도 박세영한테.
-동료 음악인들도 함께 영화 작업에 임하고 있다. 여러 뮤직비디오와 단편 <연쇄 사랑범 보라스>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동일한 역할로 출연한 보라스 역의 베이시스트 전제곤, 마오 역의 베이시스트 정수민이 대표적이다.
음악이든 영화든 항상 오랜 시간 곁에 있어 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들의 실제 모습과 영화 속 모습이 최대한 비슷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각본을 쓴다. 전제곤과는 7년동안 함께 투어를 다녔다. 독특하고 재밌는 캐릭터여서 이 인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나, 둘, 셋 러브>도 처음에는 보라스와 마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내려 했다. 작업 중 계획이 많이 바뀌었지만.
-대부분의 음악 작업을 즉흥 연주로 진행한다고. 영화 작업도 현장에서 즉흥적인 변화를 주는 편인가.
그때그때 다르지만, 현장에서 디테일을 많이 바꾸는 편이긴 하다. <하나, 둘, 셋 러브>는 틀을 탄탄히 짜고 제작에 돌입했다. 그런데 계획을 현장에서 그대로 이행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 앞으로 만들 영화들도 제작 방식이 다양하다. 지금 편집 중인 차기작은 일본에서 즉흥적으로 촬영했고, 현재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있는 다른 작품은 여러모로 철저하게 계획하고 있다.
-자꾸 음악 활동과 연관짓게 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음악계에서도 지난 12년간 15장이 넘는 음반을 발매하는 엄청난 다작으로 유명하지 않나. 쉼없는 창작의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가.
직장인 분들에 비하면 새벽에 자고 낮에 일어나는 나는 한참 게으른 사람이다. 다작의 비결은 그냥 하는 것이다. 빨리 만들어 빨리 내놓으면 그만큼 빠르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그걸로 더 좋은 음악을 만들면 되니까. 이런 사이클이 익숙하다 보니 영화도 자연스레 다작하는 것 같다. 오늘 저녁에도 차기작을 편집할 예정이고, 전주에 온 김에 추가 촬영도 몇 장면 진행하려 한다.
-<하나, 둘, 셋 러브>는 줄곧 심각함 대신 유머를, 의심 대신 사랑에의 천진한 믿음을 설파한다. 어떤 면에서는 의도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회피하려는 몸짓도 보인다.
어릴 때는 심각하고 강한 스타일의 작품을 좋아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돌아보니 조금 창피하더라. 이젠 그저 사람들이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항상 웃고 자극 없이 살자는 마음에서 음악에도 영화에도 긍정적인 표현을 담고 있다.
-장르적 구분에서도 자유로운 독특한 영화적 스타일을 구사한다. 앞으로도 비슷한 기조를 유지할 계획인지 궁금하다.
사실 내 꿈은 뛰어난 누아르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스트레인지, 트루 뷰티>라는 음반에 담은 스토리의 원안도 누아르이고. 명확한 장르성이 정립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야 늘 있지만 너무 어렵더라. <하나, 둘, 셋 러브>도 원래 이런 스타일을 의도하고 기획한 건 아니었다. 장편의 호흡을 배우기 위해 일단 도전한 결과물이다. 다음 장편은 B급 액션물을 만들 예정이고, 그 후 차차 더 무게감 있는 스토리를 풀어나가고 싶다.
-작중 <헤어질 결심>이나 <레옹> 등 영향을 받은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를 숨기지 않는다. 평소 좋아하는 영화나 감독을 조금 더 알려줄 수 있을까.
주성치, 스파이크 존즈, 구로사와 기요시. 한국 감독 중에서는 박찬욱과 장률. 장률 감독님과는 사석에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영화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아, <번지점프를 하다>도 좋아한다.
-백현진 배우와 박해일 배우가 성우 연기를 맡은 애니메이션이 독특하다. 곱등이와 지네 등의 곤충이 제갈민제(신민재)를 훈계하는 내용인데, 제갈민제의 추잡한 욕망이 벌레 수준도 못하다는 뜻일까.
정확하다.(웃음) 원래는 실제 벌레를 데려다 찍으려 했다. 그런데 여름이라 곱등이를 구하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벌레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더라. 애니메이션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한 후 술자리에서 만난 해일이 형이 곤충 역할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주었다. 원안이었던 거미 대신 지네로 바꿔달라는 말은 덤으로.
-평소 최소한의 돈벌이도 불가능한 가난한 예술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해왔다. 당신의 정체성이자 영화사의 이름인 ‘돈만스키’도 ‘돈만 좋다’는 뜻이라고. 하지만 영화로 수익을 창출하는 건 음악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향후 영화 제작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당신의 로드맵이 궁금하다.
영화는 내 진짜 꿈이었던 것 같다. 제작을 위해 사비를 쏟아붓는 와중에도 매 순간 재밌고 행복하다. 자산이라는 게 단순히 물질적인 의미로만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사실 이전에는 영화제에 출품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누군가한테 평가받는 느낌도 싫고, 내 작품이 엄청난 걸작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런데 혼자 만족하고 말기에는 함께 노력한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너무 미안하더라. 그래서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되었고, 백현진 형의 조언을 듣고 전주에 출품하게 되었다.
-독특하고 발랄한 영화 <하나, 둘, 셋 러브>가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로 가닿았으면 좋겠나.
마음대로 보시고 마음대로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나 또한 다시 볼 때마다 다른 관점을 발견하게 되니까. 평소에도 한 번 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어떻게 끝나는 건지도 모르겠고 다시 봐야만 할 것 같은 영화들 말이다. 그러니 자유롭게, 편하게 보시면 될 것 같다.
[글 박수용 / 사진 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