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영화는 계속된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본선 진출작 10편 발표!
‘영화는 계속된다’는 슬로건과 함께 개막을 준비 중인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준동)가 올해 한국 독립·예술영화를 이끌어 갈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공개했다. 2020년 1월 이후 제작된 영화 가운데 감독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을 선보이는 ‘한국경쟁’ 섹션에 진출할 최종 상영작 10편을 발표한 것이다.
한국경쟁에 소개되는 10편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올해 2월 1일까지 진행한 공모를 통해 접수된 총 108편 가운데 약 10:1의 경쟁을 뚫고 최종 선정된 것으로, 전주국제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출품된 108편 중 상당수는 세상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온 한국 독립영화다운 면모를 보여줬다”고 그 경향을 소개했다.
먼저 한국경쟁 선정작 10편 가운데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영화 3편이 눈에 띈다. 정재익, 서태수 감독의 극영화 <복지식당>은 중증 장애인 판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장애인 관련 제도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류형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코리도라스>는 장애인이자 시인인 남성 박동수 씨의 삶을 조용히 따라가며 그 내면의 풍경을 드러낸다. 두 영화가 그동안 한국영화가 자주 다루지 않았던 장애인 문제를 정면으로 비춘다면, 변규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와 그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최근 변희수 전 하사의 비극적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여러 문제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도 최종 선정작에 이름을 올렸다.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은 콜센터 직원인 진아의 삶을 통해 코로나 시대 속에서 더욱 늘어가는 ´홀로족´의 삶을 반영한 작품이다. 허정재 감독의 <첫번째 아이>는 여성, 그중에서도 첫 아이를 낳은 기혼 여성 정아의 삶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여성의 평범한 욕망이 얼마나 실현되기 어려운 일인지를 풀어낸다. 황준하 감독의 <인플루엔자>는 한때 뉴스를 뜨겁게 달궜던 간호사들의 ´태움´을 소재로 삼아 그 과정과 결과를 구체적이고 촘촘하게 그려낸다. 감정원 감독의 <희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산업재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노동자로서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한 여성의 흔적을 좇는 작품이다.
이정곤 감독의 <낫아웃>, 우경희 감독의 <열아홉>, 이재은, 임지선 감독의 <성적표의 김민영>은 청춘의 삶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담아낸 영화들이다. 먼저 이정곤 감독의 <낫아웃>은 고교야구 유망주였던 광호가 야구선수로서 좌절을 겪고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방황을 다뤘다. <열아홉>은 어렵게 살아가던 열아홉 소녀 소정의 엄마가 죽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아냈고, <성적표의 김민영>은 ´삼행시 클럽´이라는 모임을 함께했던 고등학교 3학년 정희와 민영이 졸업과 동시에 겪게 되는 관계의 변화를 독특한 감성으로 보여준다.
문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한국경쟁에는 유난히 첨예한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많이 출품됐다”며 “부조리와 모순을 폭로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듬는 작품들이 영화적으로도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팬데믹 사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들어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4월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전주영화의거리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경쟁 심사평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출품된 108편 중 상당수는 세상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온 한국 독립영화다운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뤘던 2021년 출품작 중 우선 눈에 띈 것은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영화들이었습니다. 특히 <복지식당>과 <코리도라스>는 그동안 한국영화가 자주 다루지 않았던 장애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복지식당>은 한국 장애인이 겪어야 하는 고난을 재기라는 주인공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교통사고로 심한 장애를 갖게 된 재기가 ‘중증 장애인’ 판정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안타까움과 함께 장애인 관련 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을 알게 해줍니다. 게다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스태프와 출연진 들이 만든 덕인지, 이 영화가 폭로하는 장애인 등급제의 모순과 장애인이 장애인을 착취하는 장애인 사회 내부 풍경은 너무도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코리도라스>는 장애인이자 시인인 남성 박동수 씨의 삶을 조용히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입니다. 23년 동안 장애인 시설에서 힘겹게 살아왔고, 그곳으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삶을 꾸리는 한 ´사람´의 내면 풍경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사지를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그가 발끝을 이용해 시를 쓰거나 관상어인 코리도라스를 감상하는 모습이 주는 감흥은 가볍지 않습니다. 주인공을 대상화하지 않는 태도 또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너에게 가는 길>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소수자인 성소수자와 그 부모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트랜스젠더인 한결과 그의 어머니 나비, 그리고 게이인 예준과 어머니 비비안, 이 네 사람의 삶을 통해 이 영화는 LGBTQ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배타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소수자와 비소수자 간 대안적인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또한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상은 놀라운 감동을 안겨줍니다. 특히 변희수 전 하사의 비극을 경험한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 영화의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여러 문제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코로나 시대 속에서 더욱 늘어가는 ´홀로족´의 삶을 반영하는 매우 시의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 소재를 소비하기보다는 현대 한국 사회 삶의 한 구석을 예리하게 도려내는 날로 사용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진아가 겪는 섬뜩하고 모진 순간들은 결국 보는 이들의 고독감 또는 공포감으로 증폭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 아이>는 여성, 그중에서도 첫 아이를 낳은 기혼 여성 정아의 삶을 따라갑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하겠다는, 대한민국 여성의 평범한 욕망이 사실은 실현되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영화는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정아는 보모라는 존재를 또 한 명의 여성으로 깨닫게 되는데, 이는 이 영화가 통속적 이야기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인플루엔자>는 한때 뉴스를 뜨겁게 달궜던 간호사들의 ´태움´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간호사들이 왜, 어떻게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매우 구체적이고 촘촘하게 드러냅니다. 태움으로 괴로움을 겪던 주인공 다솔이 신입 간호사 관리를 담당하게 되면서 변화하는 과정은 모든 작은 사회에 드리워진 권력의 그림자를 보여줍니다. <희수>는 사회 문제를 표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산업재해를 커다란 배경으로 놓고 전개되는 영화입니다. 노동자로서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한 여성의 파리한 흔적을 좇는 이 영화는 극단적으로 간결한 표현을 통해 지나칠 수 없는 성취를 이뤘습니다. 독립영화계 최고 스타 중 하나인 공민정의 연기 또한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낫아웃> <열아홉> <성적표의 김민영>은 ‘울렁벌렁’거리는 청춘의 삶을 담아낸 영화들입니다. <낫아웃>의 주인공은 고교야구 유망주인 열아홉 소년 광호입니다. 프로야구 선수 드래프트에서 선발되지 못해 상처받은 그는 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바꿉니다. 광호가 대학에 가려고 하자 고교 감독은 뇌물을 은근히 요구하고 동료들은 등을 돌립니다. 영화는 이제 어리석은 짓을 벌이는 광호의 울퉁불퉁 삶을 쫓아가게 됩니다. <열아홉>의 주인공도 제목 그대로 열아홉 소녀 소정입니다. 임대아파트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그는 엄마의 사망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겪게 됩니다. 만약 엄마의 죽음이 알려지면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며,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집에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정은 뜻밖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성적표의 김민영> 속 두 소녀 정희와 민영의 이야기도 열아홉 고3 때부터 시작합니다(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는 열아홉 살들은 이야기의 씨앗도 많이 갖고 있는 모양입니다). ´삼행시 클럽´이라는 모임을 통해 끈끈한 우정을 이어 왔던 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대학생 민영과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은 백수 정희가 서울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이 영화는 두 친구의 오밀조밀한 관계의 거미줄을 독특한 감성으로 수놓듯 보여줍니다.
지난 한 해가 코로나 19 사태로 점철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지 않았던 것은 의외의 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팬데믹 사태 또는 팬데믹 시대를 영화로 옮기기에 우리의 준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 팬데믹 사태가 기존에 존재하던 우리 사회의 모순을 더욱 불거지게 했고, 이 사실이 이미 올해의 영화들 안에 반영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내년 영화들에는 팬데믹 사태가 더욱 명징하게 드러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여성의 삶을 소재와 주제로 삼은 영화가 지난해에 비해 놀랍게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양한 여성 문제를 다양하게 녹인 영화가 즐비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출품작 중에는 여성을 다룬 영화가 많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 사이 한국 여성의 처지가 극적으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더욱 많고, 좋고, 힘 있는 ´여성영화´가 만들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들을 계속 전주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팬데믹 사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들어 저희에게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프로그래머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