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트라인’ 부문은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없어졌다가 올해 부활한 부문이다. ‘영화보다 낯선’ 부문이 주로 형식적인 실험과 도전에 초점을 맞춘다면, 프론트라인 부문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도발적이고, 과감한 시도를 보여 준 작품들을 상영한다.
올해 프론트라인 부문에서 상영되는 11편의 영화들은 사적인 경험을 담아낸 작품에서부터 환경 파괴와 지역 공동체의 붕괴에 대한 작품, 그리고 역사적인 주제에 관한 작품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다룬 2편의 다큐멘터리 <입법회 점령사건>과 <붉은 벽돌벽 안에서> 같은 경우, 크레디트에서 볼 수 있듯이 무수한 홍콩의 저널리스트들과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협업을 통해 만들어 낸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다. 프랑스 감독 셀린 루제의 <정글의 외침>은 파푸아뉴기니의 외딴 숲속 마을에 미국 최대의 석유회사 엑손모빌이 천연가스를 개발하겠다고 공장을 만들면서 불어닥친 현대화의 광풍을 담은 작품이다. 타락한 정부와 돈에 눈이 먼 사람들, 그리고 그 틈에서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힘없는 민초들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한편 <페블스>는 인도 남부의 찢어지게 가난한 지역, 아리타파티를 배경으로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모습을 통해 빈곤의 대물림 속에 무기력한 사람들과 이미 해체된 가족 관계를 보여 준다. 다리오 도리아 감독은 <비센타>를 통해 19세 지체 장애 딸이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것을 알게 된 비센타의 모습을 보여 주며 낙태 문제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역시 아르헨티나 작품 <개구리들>은 남자 친구나 남편이 감옥에 있는 젊은 여자들의 힘겨운 삶을 보여 준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감옥을 방문해 그곳에 없는 음식, 마약, 때론 핸드폰까지 다양한 것들을 제공한다. 교직원과 학생 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뒤얽혀 300여 명의 피해자를 낳았던 대만판 ‘도가니 사건’을 바탕으로 한 극영화 <침묵의 숲> 역시 끔찍하지만 우리가 직시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들에 대한 작품이다.
<가족의 투시도>는 전통주의와 현대화가 갈등을 반복해 온 이란의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 주는 독창적이고 사적인 다큐멘터리이고, 이탈리아의 두 감독이 공동 연출 한 <전쟁과 평화>는 ‘영화에 관한 영화’로 과거의 영화와 현재의 기술로 가능해진 기록을 통해 전쟁을 보여 주는 독특한 작품이다. ‘독특함’은 세계가 멸망한 이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류의 삶에 대한 상상을 담은 영화 <최후의 언어>에서 최고조에 도달할 것이다. 감독이자 대안적인 삶을 위한 활동가인 조너선 노시터는 영화가 하나의 문화적 도구로서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때로는 급진적이고 때로는 끔찍한 내용을 담은 작품들을 아우르는 프론트라인 부문에는 매끈하고 세련되기보다는 거칠고 날것의 느낌을 갖는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을 통해 개인이건, 가족이건, 혹은 더 큰 사회 집단이건 ‘전선에 서 있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고,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작품들 또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전진수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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