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했고, 그 혼란과 후유증 역시 얼마나 더 지속될지 가늠이 되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다시, 민주주의로'라는 특별 섹션을 통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 상황을 다룬 여섯 편의 다큐멘터리들을 소개한다.
지구촌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과 영토분쟁에 이은 인종청소는 수많은 난민을 낳았고, 노르웨이에서도 난민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노르웨이식 데모크레이지>는 노르웨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혐오 스피치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이제 노르웨이의 민주주의는 증오 확산을 위한 도구로 표현의 자유가 악용되는 문제와 극단주의라는 복잡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마지막 공화당원>은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 이후, 트럼프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원 중 한 명인 국회의원 애덤 킨징거(Adam Kinzinger)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난동 이후부터 킨징거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의 몇 달을 기록했다. 정치인이 '소신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극심한 양극화 시대에 ‘어떻게 초당적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편, <수단, 우리를 기억해 줘>는 수단의 역사가 요동쳤던 몇 해 동안의 이야기를 몇몇 젊은이들을 통해 알려준다. 2019년, 30년 동안 지속된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의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특히 가부장적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젊은 여성들이 그 주축이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들의 열망은 비록 군부 쿠데타로 좌절되었으나,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202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과 룰라 대통령 취임 후 극우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과 대법원을 습격했던 사건 등 <브라질 대선의 기록>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산드라 코구트 감독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로부터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까지 격동의 브라질 정치를 기록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브라질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었다는 사실이 선명해지기는 했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는 필리핀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3월 ‘반인도적 살상 범죄 혐의'로 체포된 전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에 맞서 당시 부통령이었던 레니 로브레도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중 운동'을 조직했고, 이어진 선거에서 대통령에 출마했다. 비록 그녀의 꿈은 극우 포퓰리즘에 막혀 잠시 주춤하게 되었지만, 로브레도는 여전히 희망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고, <필리핀 민주주의의 불씨>를 통해 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슬로바키아의 희망, 주자나 차푸토바> 역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다. 인권 변호사 출신의 주자나 차푸토바는 부패한 권력에 맞서 2019년 대통령이 되었고, 슬로바키아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그녀의 퇴진을 아쉬워했지만, “나는 지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자신의 말을 지킨 대통령을 가졌던 슬로바키아 국민이 부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전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