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의 삶을 다룬 <본 투 비 블루>는 일대기 형식을 취하는 보통의 전기영화와는 노선을 달리한다. 영화는 그의 연주를 닮아 담백하지만 미묘하다. 로버트 뷔드로 감독이 풍기는 느낌도 영화와 비슷했다. 건강한 캐나다인의 느낌과 예민한 예술가의 분위기가 공존했다. 데뷔작 <뷰티풀 섬웨어>(2006) 이후 <큐비클 워리어스>(2013), <솔로>(2013) 등 다수의 영화에 프로듀서와 각본가로 이름을 올린 로버트 뷔드로 감독이 두 번째 연출작 <본 투 비 블루>를 들고 전주를 찾았다.
Q.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의 삶을 영화로 옮겼다. 원래 재즈 애호가였나.
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아한다. 영화를 공부하던 학생 시절인 2003년에는 1940년대 재즈 클럽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을 다룬 5분짜리 단편 <드림 레코딩>도 만들었다. 그때 인연을 쌓은 캐나다의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데이비드 브레이드가 <본 투 비 블루>에도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Q. 많은 재즈 뮤지션 중에서 쳇 베이커에 매료된 이유는 뭔가.
쳇 베이커는 특별한 스토리를 지닌 뮤지션이다. 젊은 시절엔 제임스 딘에 비견될 만큼 멋진 외모를 지녔지만 약물중독에 빠지고 치아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하면서 인기와 명성을 잃었다. 그러고는 다시 멋지게 재기했다. 음악적으로는 매우 로맨틱하지만 심플한 음악을 선보인 뮤지션이었다. 미국 서부 해안 출신이어서인지 그의 음악엔 바다의 낭만이 깃들어 있다. 영화적으로 표현할 것이 많은 뮤지션이다.
Q. 쳇 베이커의 인생에서 1960년대의 삶에 집중한다. 이 시기에 집중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1960년대 미국에서 재즈는 죽었다. 쳇 베이커는 그런 시기를 통과하면서 재기의 몸부림을 친다. 당시 쳇 베이커에겐 사랑하는 흑인 여성이 있었는데, 1960년대 미국에선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 문제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였다. 이런 요소가 미묘하게 얽혀 있는 시대라 흥미로웠다.
Q. 뉴욕의 재즈클럽 버드랜드에서 연주하는 과거 장면은 곧 쳇 베이커의 전기영화 속 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영화 속 영화가 과거와 현재, 쳇 베이커와 그의 연인 제인(카르멘 에조고)을 연결하는 고리로 사용된다. 흥미로운 시작이자 설정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쳇 베이커의 전기영화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영화다. 일대기 형식을 취하는 전형적인 전기영화처럼 만들기 싫어서 활용한 장치이다. 그럼으로써 과거와 현재, 판타지와 현실, 과거의 연인과 현재의 연인을 모두 불러올 수 있게 되었다.
Q. 연주 장면을 연출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무엇인가.
에단 호크는 쳇 베이커의 연주 영상을 보면서 그의 트럼펫 핑거링을 모두 익혔다. 대역을 한 장면도 쓰지 않았다. 에단 호크가 진짜로 연주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연주 장면은 풀숏으로 찍었다. 바닥을 쳤다가 서서히 명성을 되찾아가는 뮤지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세팅된 큰 무대를 보여주거나,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이 이 영화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음악의 경우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충분히 알 수 있게끔 <오버 더 레인보우>나 <마이 퍼니 발렌타인> 같은 대중적인 재즈곡들을 선곡했다.
Q. 에단 호크를 캐스팅한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에단 호크는 영리하고 예민한 감각을 지닌 배우다. 자유분방하고 새로운 것을 이것저것 시도하려는 성격은 재즈 뮤지션의 특징과도 닮았다. 그런 점에서 에단 호크는 쳇 베이커에 완벽히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재밌게도, 15년 전 에단 호크는 쳇 베이커를 연기할 뻔 했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쳇 베이커의 영화를 만들려 했었고, 그때 에단 호크가 쳇 베이커를 연기하기로 했었다. 결국 링클레이터의 프로젝트는 무산됐지만 에단 호크는 여전히 쳇 베이커라는 인물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나의 캐스팅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Q. 개인적인 영화 취향도 궁금하다. 어떤 영화들을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나.
마틴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1980)가 내 최고의 영화다. 복싱 챔피언 제이크 라모타의 실화를 탁월하게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전기영화여서, <본 투 비 블루>를 제작하는 동안 에단 호크와도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
글 이주현·사진 최성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