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멈춰주세요.” 단편 <검은 돼지>를 들고 전주를 찾은 ‘감독’ 안재홍이 겸손과 부끄러움이 섞인 태도로 당부한다.
<족구왕>(2013), <응답하라1988>(2015), 최근 <위대한 소원>(2016)까지 배우로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착실히 구축해가고 있는 안재홍이
지난해 2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영화 한편을 찍었다.
코리아시네마스케이프 단편 섹션에서 상영되는 <검은 돼지>는 20대의 마지막 날 하루에 세 번 자장면을 먹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자장면을 정말 좋아하는 안재홍이 “영화에 자장면을 먹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오면 어떤 기분일까, 자장면을 흑백으로 찍으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을 품으면서 시작된 영화다. 제작비 1백만원으로 안재홍을 포함한 5명의 스텝이 3일 동안 촬영해 완성했다.
“프리프로덕션을 혼자 진행했는데, 실제로 하루에 세 번 자장면을 먹도록 촬영 스케줄을 짜는 바람에 결국은 정말 하루에 세 번 자장면을 먹었다.”
애인에게선 마음을 거부당하고 쉽게 만난 사람에게선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처량한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점, 반복의 코드를 활용해 완성한
세밀한 일상화라는 점에서 <검은 돼지>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홍상수 감독의 제자이기도 한 안재홍은 건국대 영화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부터 부지런히 영화를 연출했다. 학생일 땐 1년에 한편씩 워크숍의 일환으로 단편영화를 찍었고, 졸업 후엔 단편 <열아홉, 연주>(2014)를 만들어 대단한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선보였다. “친구들과 모여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 즐겁다.” 연기하는 틈틈이 연출을 했던 이유는 단지 그뿐이다. 연출에 대한 확고한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마치놀이처럼” 진행했을 뿐이다. 차기작은 이선균과 함께 출연하는 사극 <임금님의 사건수첩>. 임금님을 도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사관 역을 맡았다. 지금은 5월 초 촬영에 들어가는 이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고 한다. “멀리 보는 시각이 부족한 것 같다. 눈앞에 놓인 것들을 잘 해나가고 싶다.” 영화작업의 즐거움을 알고, 그 즐거움을 나눌 줄 아는 안재홍에 대한 기대를 당분간은 멈추지 못할 것 같다.
글 이주현·사진 최성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