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미술의 경계는 어디일까. 영상과 영화를 구분할 수 있을까. 로이스 파티뇨는 이미지의 최전선에서 영화의 영역을 넓혀온 젊은 작가다. 장편 <죽음의 해안>(2013)으로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우석상을 수상한 그는 2년 만에 4편의 단편과 전시를 준비해 다시 전주를 찾았다. 전주영화제작소 1층 기획전시실에 마련된 전시 ‘버티칼:시간과 경관’을 통해 그가 전하고 싶었던 바를 물었다.
이번에는 4편의 단편과 1개의 전시를 들고 전주를 찾았다.
그 동안 현대미술과 영화 사이를 오가면서 다양한 형식적 시도를 해왔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 결과물이다. <죽음의 해안>때부터 풍광(landscape)과 인간 사이 관계에 주목해 왔는데 이후 <지속-풍경. 바위들>(2013)에선 풍광이 담고 있는 시간에 대해 주목했다. 4편의 단편은 독립된 작업이라기보다는 일련의 자연스러운 흐름 아래 있다. 이번 전시가 그 총제적인 화답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네거티브 필름 이미지를 쓰거나 스크린을 확장하는 등 표현방식이 점점 실험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여러 방식을 시도해본다는 의미에선 실험적이다. 다만 내 관심은 그 때도 지금도 항상 풍광과 시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 맺혀 있다. 앞으로도 풍광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미적인 면을 새로운 영화적 언어를 통해 탐구하고 싶다. 가령 <밤 속의 밤>(2015)에서는 네거티브 필름을 활용해 밤과 낮의 이미지를 역전시켜봤다. 배경이 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제레스산은 과거 밀수업자들이 넘쳐났던 곳이다. 실제 촬영은 낮에 했지만 네거티브 필름을 활용해 밤의 풍광으로 바꿔봤다. 그들의 시간을 ‘유령’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풍광과 시간은 당신의 중요한 화두다. 당신이 생각하는 ‘풍광’의 개념은 무엇인가.
내 안에 여러 의미가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정의를 꼽자면 ‘하나의 이미지를 응축한 시간의 층’이다. 풍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역사와 시간이 축적된 흔적이다. 그 접혀 있는 시간과 사람들 사이의 연결성을 탐구하려 한다. 풍광이 품고 있는 어떤 초월적인 에너지를 영화작업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원래 자연 속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내 영화는 그 때 느꼈던 감흥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해도 좋겠다.
이번 전시 ‘버티칼: 시간과 경관’에 대해 짧게 설명한다면.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수평적 시간과 수직적 시간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수평적 시간은 자연의 시간이고 수직적 시간은 인간 내면의 시간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 두 시간 축이 만나는 지점을 표현해봤다. 다중 스크린 프로젝션과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을 통해 ‘멈춰져 허공에 매달린 시간’, ‘어둠 속에 숨겨진 시간’들을 형상화 했다.
이번에는 단편과 전시로 전주를 찾았는데, 장편 계획은 없나.
한창 준비 중이다. 단편 작업도 장편을 위한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도 갈라시아 북서쪽 해안이 무대다. 전작이 풍광과 사람의 거리에 관한 관찰이었다면 이번 영화의 컨셉은 반복되는 시간과 사람들의 관계가 될 것이다. 죽은 자와 산자의 공존, 느리게 흐르는 의식의 시간들. 제목이 벌써 10번은 바뀌었는데 지금 가제는 <워터 인 워터>다. (웃음)
풍광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혹시 전주를 오가며 영화로 담아보고 싶은 풍광을 발견했나.
2년 전엔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 거의 돌아다니지 못했다. 이번엔 일주일정도 머물 예정이니 기회가 되면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남쪽 지방이 특히 아름답다고 들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이어가는 영화제 중 하나다. 전주의 비전에 깊이 공감한다. 내 생각에 좋은 영화제란 용감한 영화들을 소개해주는 영화제다. 전주가 그렇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내 작업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글 송경원, 사진 박종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