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솔직한 여자_ <최악의 여자> 한예리
“이 계절의 전주, 정말 좋지 않아요? (웃음)” 한예리가 지난해 서울의 서촌과 남산 일대에서 가을볕을 받으며 촬영한 <최악의 여자>를 들고 전주를 찾았다. 한국단편경쟁 부문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최악의 여자>에서한예리는 단역배우 은희를 연기한다. 은희는 남자친구 현오(권율)와 현오 모르게 만나온 이혼남 운철(이희준)에 이어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와도 얽히고설킨다. 그것도 단 하루 동안에. 곤경에 처한 은희를 ‘최악의 여자’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은 태도나 말투를 달리 하지 않나. 그걸 좀더 극적으로 보여준 거다. 오히려 은희는 자기 감정에 솔직한 여자다. 관객들이 좋아해줄 만한 면이 분명 있다.” 함께 연기한 세 남자배우들의 공도 짚었다. “여러 번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이희준 배우는 보기만 해도 서로 뭘 하려는지 알 정도다. 재치 있는 권율 배우는 현오의 유머러스한 면을 제대로 살려줬다. 이번에 처음 만난 이와세료는 어찌나 상대방을 편하게 대해주는지. 내가 그들의 액션에 리액션만 하면 될 정도로 수월하게 연기한 것 같다.”
심사위원으로서의 마음가짐은 어떨까. “여러 번 독립영화 현장을 경험해 온 나로서는 그 열악한 제작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더욱 응원하고 싶어진다. 신기하게도 좋은 작품은 심사하는 사람들의 만장일치로좋다고 한다. 누가 봐도 좋은 건 좋은 건가 싶다.” 전주국제영화제 이후에도 올해 한예리를 만날 기회는 다행히도 많아 보인다. <사냥>, <최악의 여자>, <춘몽>이 차례로 개봉을 준비 중이다. “하나 같이 좋은 기운으로 작업한 작품들이라 그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가고 싶다. 빨리 좋은 작품과 만나길. 내년 농사도 잘 지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다. (웃음)” 한동안 담담한 면모의 인물들을 연기해온 터라 다음에는 밀도 있는 내면 연기, 감정을 발산하는 역할도 해보고 싶다고 귀띔한다.
글 정지혜·사진 최성열
결코 얄밉지 않은 남자_ <최악의 여자> 권율
“사람들이 나 엄청 알아본다니까.”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해 선글라스와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꽁꽁 가리고 다니는 신인배우 현오가 애인 은희(한예리)에게 던지는 이 ‘뻔뻔한’ 대사는 현실의 권율에게도 적용 가능한 말이다. 카페 창가 자리에서 권율과 인터뷰를 하는데 마침 길 가던 여성이 권율을 향해 소리친다. “멋있어요!” 새하얀 피부와 선이 고운 이목구비 때문인지 권율은 차가운 도련님 같은 인상을 풍긴다.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2015), <한 번 더 해피엔딩>(2016)에서 연기한 완벽한 남자 캐릭터들은 그런 이미지를 더 공고히 만들었다. “김종관 감독님도 나를 얌전한 이미지의 배우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레드카펫> (2013) 뒤풀이자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고는 현오와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더라. 그렇다고 내가 현오처럼 행동한다는 건 아니다. (웃음)” 현오는 여자 친구가 서운해 할 법한 말과 행동을 자주 일삼는데 그 모습이 결코 얄밉지 않다. 장난기 많고 사교적인 권율의 타고난 활달함과 귀여움이 현오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만든다.
<최악의 여자>를 통해 여러 바람도 이루었다.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을 보고 팬이 된 김종관 감독”과 바라던 작업을 함께 할 수 있었고 “나를 내려놓는 연기” 또한 경험할 수 있었다. “캐릭터성이 부각되는 연기가 아니라 내추럴한 연기를 해야 하니 혹시 내 연기가 밋밋해 보이지는 않을까. 그래서 캐릭터를 좀 더 극화시키기도 했는데, 감독님이 연기의 밸런스를 잘 맞춰주었다. 이번 작업을 통해 더 많이 나를 내려놓을 수있는 용기를 배웠다.”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재미를 알게 된 권율. 그의다음 행보는 아마도 드라마가 될 것 같다. 차기작 <사냥>과 <최악의 여자> 또한 올해 개봉 예정이다.
글 이주현·사진 최성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