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영화를 생각할 때 여전히 우리의 뇌리를 사로잡는 것은 파트리시오 구스만의 3부작 다큐멘터리 <칠레 전투>(1975)인지도 모른다. <칠레 전투>는 칠레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아옌데 정부가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는 과정과 이에 대항한 민중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칠레영화에 정치성이라는 하나의 명확한 이미지를 심어줌과 동시에 칠레영화를 정치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하는 망령이기도 했다. <모던 칠레 시네마 :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영토>에서 소개되는 영화들이 국제적으로 소개되는 칠레영화가 정치성에서 벗어났음을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정치성이라는 영토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보여준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각 작품들은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다양한 성격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엿보인다. 이미지적으로는 무언가가 숨겨진 듯한 음울한 색조가 두드러지고, 서사적으로는 이방인(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우선 정치적 망령에 사로잡힌 한 남자로부터 출발해보자. <도그 플레시>(2011)의 알레한드로는 최근 발작 증세를 겪는다. 병원에서는 그의 신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신경전문의를 만나볼 것을 권한다. 그는 막 자살한 친구를 떠나보낸 참이다. 이혼한 아내는 그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딸에게는 다가설 용기가 없다. 그는 아내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지만, 이를 전하지 못한다. 유일한 친구인 기르던 개를 자기 손으로 떠나보낸 그는 마침내 종교에 의지한다. ‘우리에게 망각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외치는 알레한드로에게 망각이라는 구원은 찾아올 것인가. 피노체트 정권하에 고문 기술자로 일하던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할 것인가, 주인공을 타자화할 것인가를 두고 망설이게 한다.
알레한드로가 난감한 타인이었다면 <하녀>(2009)의 주인공 라퀴엘은 익숙한 타인이다. 23년간 한 집안의 하녀인 그녀는 주인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을 지닌다. 가족은 라퀴엘의 생일을 맞아 깜짝 파티를 준비할 정도로 그녀를 살뜰히 챙기지만, 그들 간에 어쩔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 어느 날 라퀴엘이 집안일을 하던 중 졸도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가족은 라퀴엘의 작업을 나눠 할 하녀를 새로 뽑는다. 그러나 라퀴엘은 매번 이들을 골탕 먹이면서 밀어낸다. 그런데 세 번째 후보 루시는 만만치 않다. 라퀴엘의 행동에 대해 예상치 못한 반응으로 대응하며 라퀴엘의 마음을 연다. 치열한 자리다툼 끝에 오는 연대의 순간이 담긴 <하녀>는 본 섹션에서 소개되는 작품 중 가장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파블로 라라인의 <더 클럽>(2015)은 이방인들이 모여 이룬 집단을 보여준다. 작은 어촌 마을의 외딴 건물에 한명의 수녀와 몇명의 신부가 모여 산다. 이들이 왜 이곳에 모여 지내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분명한 건 이들은 현재 기도와는 멀어진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낙은 경주견을 기르며 마을에서 열리는 개 시합에 출전시키는 것이다. 무료하던 이들의 일상은 새로운 신부의 등장, 그리고 돌연한 죽음으로 흔들린다. 음울한 색조와 톤 다운된 화면은 그 자체로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의 비밀스러운 얼굴을 형성한다. 의뭉스러운 얼굴 뒤로 종교와 동성애에 관한 문제 제기를 내포한 작품이다.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 알멘드라스의 <헛소동>(2016)은 젊은 세대들의 유희적 일상에 파고든 정치 문제를 논한다. 빈센트는 집 근처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레즈비언 커플과 어울리게 된다. 이들의 초대로 파티에 참석한 빈센트는 고주망태가 되어 이튿날 새벽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아침 빈센트는 불과 몇 시간 전 자신이 동승한 차에 치여 사람이 사망했으며, 사고 당시 운전자로 자신이 지목됐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관객에게 사건의 진실을 미리 알려준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실의 부조리에 주인공이 어떻게 맞서는가를 보여줄 것이 예상되지만, 영화는 주인공을 학대당하는 영웅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 주인공이 어떻게 부조리 속에 몸을 담그게 되는가를, 마치 스스로 비웃듯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인물인 빈센트처럼 <날치의 여름>(2013)의 주인공 마네나 역시 중간자적 인물처럼 보인다. 호수를 소유한 부유한 판초는 최근 자신의 호수를 어지럽히는 잉어를 잡기 위해 호수에 전기 담장을 친다. 이로 인해 판초와 그 주변에 사는 이들이 대립하게 되는데 판초의 딸 마네나는 마을 소년들과 어울리며 타인과 심정적으로 더 가까이 위치한다. 한편, 마을에서는 마치 잉어를 잡으려는 욕망의 후유증처럼 가축들이 실종되거나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안개 낀 호숫가와 우거진 숲, 숲 어귀의 마을을 오가며 숨겨진 갈등을 천천히 매만진다.
<한여름>(2011)은 휴양지에 사는 현지인들과 호텔 투숙객을 캠코더로 즉흥 촬영한 듯한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스케치한 작품이다. 조악한 화질은 인물과 공간을 명확히 보여주기보다는 흐릿하게 지워버린다. 롱숏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오가는 구도는 양쪽 모두 인물을 소외시키며 외로운 정조를 배가시킨다. 한여름에 하는 명상 같은 영화다.
<목요일에서 일요일까지>(2012)는 평범한 가족여행에 잠복한 갈등을 어린 소녀의 시선에서 보여준다. 새벽녘에 자는 아이를 깨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때 카메라는 아이의 방 안에 남아 창밖으로 가족들이 떠날 채비를 하는 모습을 멀찍이 바라본다.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음울한 여행은 예고된다. 어딘가 향하는 가족을 둘러싼 차창 밖 풍경도 황량하기만 하다. 가족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장면을 원경에서 잡는 후반 시퀀스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소희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