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FF 26th LOGO

연기의 맛을 알아가고 싶다_ <우주의 크리스마스> 심은진 | 준비가 된 것 같다_ <우주의 크리스마스> 허이재
2016-05-02 17:51:00

연기의 맛을 알아가고 싶다_ <우주의 크리스마스> 심은진

“시각적으로는 아니지만, 왠지 안개가 잔뜩 낀 것 같았다.” <우주의 크리스마스>의 시나리오를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다. 그 느낌만으로 금세 작

품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즉각적인 감흥만큼이나 고민이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가 맡은 도연이라는 역이 지금까지는 한 번도 연기해보지 못한, 유부녀에 아이까지 둔 엄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주변 친구들을 관찰했다. 그들 사이의 대화 내용 물론 제스처나 표정 변화까지, 직접적으로 특정 상황을 질문하기보다 그저 유심히 바라봤다. 주인공 우주가 자신과 이름이 같은 또 다른 우주들을 만나는 몽환적인 판타지인 <우주의 크리스마스>에서 우주의 옛 친구인 도연은 유일한 “밝음”이었다. 얼핏 “세상에 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흔히 떠올리는 “억척스러운 아줌마”는 아니다. “도연은 우주의 친구이자 연적(戀敵)이었다. 시간이 흘러 서로 다 이해한 사이가 됐어도, 한때 연적이었던 여자의 에너지만큼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상도 메이크업도 화려하게 꾸미고, 누군가의 엄마이되 자기 삶을 충실히 지키는 여자의 이미지를 놓지 않았다. 배우이기 전에 걸그룹 베이비복스의 멤버였던 심은진은 사진과 회화 작업을 내건 전시회도 연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연예인’이라고 칭한다. 다양한 능력을 선보일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기 경력 11년을 맞은 요즘 그녀는 부쩍 연기의 맛에 푹 빠져 있다. “배우로서 첫 경험 같은 영화”인 <우주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가장 낯선 역할을 소화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그녀가 느낀 가능성을 머지않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달 촬영을 시작하는 새로운 드라마에서는 생애 첫 악역을 맡는다. 혹시나 ‘심은진, 분노의 머리 끄댕이 시전’ 같은 게시물이 돌아도 놀라지 마시라.

문동명 객원기자·사진 최성열

준비가 된 것 같다_ <우주의 크리스마스> 허이재

“괜찮아?” 섣부른 위로의 말은, 왠지 꺼낼수록 더 미안하다. 상대의 아픔이 염려되어 그런 게 아니다. 단어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넓은 행간을 제대로 전할 수 없을까봐 걱정스럽다. 우리는 쉽게 아픔과 상처를 말하지만 ‘아픔’이란 단어 하나에도 각각의 사연과 서로 다른 시간이 묻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긴 시간을 들여 대화하고 설명을 한다. 아마 영화를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줄 시놉시스에는 담기지 않은 사연, 표정을 봐야만 알 수 있는 감정, 그 날 그 날의 서로 다른 공기들을 긁어모아 최대한 상대의 마음에 다가가려 애쓴다. <우주의 크리스마스>는 그 길고 섬세한 위로의 시간을 위한 영화다. 이름이 같은 세 여인의 삶이 운명처럼 교차하는 이 영화는 언뜻 판타지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공감의 순간을 그린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이다. “10대(윤소미)가 갓 아픔을 시작하고, 30대(김지수)가 지난 아픔을 돌이켜 보듬어 보는 인물이라면, 20대의 성우주는 이제 한창 아픔을 통과하는 인물이다.” 20대 성우주 역을 맡은 배우 허이재는 7년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이 이야기를 고른 이유를 ‘이해가 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삶이 조금씩 바뀌는 그 순간의 에너지를 좋아한다. 말로 전달되는 사건이 아니라 사건 이후의 풍경, 사건이 각자의 인생에 끼치는 소소한 변화들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 말 그대로 허이재의 연기는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이 동심원을 그리듯 천천히 퍼져나간다. 잠시 스크린을 떠나 있었지만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은 배우로서 결코 아깝지 않을 기회였던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마냥 부드럽고 순한 성격인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깎여 나가면서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큰 스크린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게 아직도 어색하다는 이 신중하고 예민한 배우는 공백이란 말이 무색 할 만큼 한층 깊어져 돌아왔다. 그동안 성실하고 밝은 역할을 주로 맡아온 그녀는 이젠 다른 역할들을 맡을 준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여러 색깔의 사람들이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각자 다른, 그 캐릭터만의 반응을 상상하는 게 더 재미있다.” 우리도 이제 새로운 모습의 그녀를 지켜볼 준비가 된 것 같다.

글 송경원·사진 최성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