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관한 광범위한 이해를 바탕으로 완성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서양 문화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580년과 1613년 사이 셰익스피어가 발표한 희곡들은 총 37편 정도인데, 그중 영국대학 필름·비디오협의회가 집계한 ‘영화화된 작품’만도 무려 420여 편에 달한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전주국제영화제는 8편의 셰익스피어 영화를 선정해 ‘스페셜 포커스’ 프로그램으로 내놓는다.
만일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비극, 희극, 사극’으로 구분한다면, 로렌스 올리비에의 <헨리 5세>(1944)와 리차드 론크레인의 <리차드 3세>(1995)는 역사극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올리비에의 영화는 엘리자베스 시대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바탕으로, 당대를 활기차게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훗날 이 작품은 그의 ‘셰익스피어 3부작’의 시초가 된다. 셰익스피어 역사극 중 가장 자주 영상화된 작품인 <리차드 3세>는 론크레인의 손을 거치며 ‘1930년대 런던’으로 시대적 배경을 옮겨간다. 원작 속의 장미전쟁은 세계대전이 되고, 리처드는 히틀러 격의 인물로 변화한다. 당시 스토리를 노골적으로 단순화시켰단 이유로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의 대중적 성공은 타당해 보인다.
로렌스 올리비에, 오손 웰즈, 케네스 브래너 3인방은 ‘셰익스피어의 영화화’를 선도한 감독들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브래너는 ‘대중 보급자’의 역할을 맡았다. 이렇듯 그의 <햄릿>(1996)은 대사와 연기, 배경 등 일부 요소를 차별화시키면서도 쉽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장점을 지닌다. 케이트 윈슬럿과 줄리 크리스티, 로빈 윌리엄스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점 또한 작품의 스펙터클을 높여준다. 인트로 시퀀스의 음산한 아름다움이 끝까지 유지되는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드>(1971) 또한 흥미로운 각색을 보인다. 잘 알려진 오손 웰즈의 <맥베드>(1948)와 비교해 보면, 폴란스키의 작품이 지닌 원작에의 충실도는 더욱 부각된다. 마녀와 폭군 맥베드의 전설이 전해지는 11세기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폴란스키는 ‘권력에 대한 인간 욕망의 실체’에 대한 광범위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편, 현대적 연극 연출의 대가 피터 브룩의 <리어왕>(1971)도 실험적 시도를 취한다. 이 작품은 연극의 영화화를 넘어서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키는데, 특히 영상화 방법에 있어 그렇다. 프레임은 미니멀하지만 감정은 폭발적으로 구사되며, 롱테이크 화면은 배우들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비현실적 작품’이라 불리는 <템페스트>(1979)는 데릭 저먼의 버전으로 소개된다. 주인공 프로스페로나 정령 에어리얼이 보이는 초자연적 모습은 연극보다는 영화에 더 적합한 설정처럼 보이는데, 저먼은 여기에 급진적 성향과 더불어 명확한 사회적 목표를 더한다. 동성애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와 더불어 셰익스피어 희곡이 지닌 보수성에 대한 전복적 해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원작의 해석적 스펙트럼은 더 넓어진다. 영화사 초기 감독들이 대거 참여한 <무성시대의 셰익스피어>(1899-1911)에서도 <템페스트>의 또 다른 각색과 만날 수 있다. 퍼시 스토우의 원-릴러 단편영화 <더 템페스트>(1908)는 영국영화협회(BFI)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무성영화 패키지 중 한편이다. 이밖에 더글라스 히콕스의 <피의 극장>(1973)과 같이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B급 호러영화도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이지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