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여자>(한국경쟁 부문)는 세 남자와 얽히며 곤경에 빠지는 단역배우 은희(한예리)의 하루를 그린다. 남자친구인 현오(권율)와 현오 몰래 만나온 이혼남 운철(이희준), 그리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까지. 세 남자를 대하는 은희의 얼굴은 각각 어떻게 변하게 될까.
<최악의 여자>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사람은 상대방과 어떤 관계냐, 처한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매번 다른 면모를 보이게 되지 않나. 그걸 좀더 극적으로 풀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극의 구심점이 되는 은희 역에 배우 한예리를 캐스팅했다.
예리씨는 차분하고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느낌의 사람이 은희처럼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뭉스럽게 거짓말을 해나가는 역을 한다면 캐릭터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워낙 연기를 ‘엣지’있게 잘하는 배우라 캐릭터에 대해서는 크게 말하지 않았다.
각기 다른 개성의 세 남자를 연기한 배우들도 인상적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로 눈여겨본 이와세 료는 인품이 정말 훌륭하다. 물 흘러가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 상대 배우의 연기를 받아내준다.
권율은 시나리오를 꼼꼼히 분석해 정확한 연기를 보여줬다. 자기 만의악센트가 있는 이희준은 운철이라는 인물의 유머러스한 면을 제대로 살렸다. 내가 배우 복이 많았다. (웃음)
서울의 서촌과 남산 일대를 배경으로 걷는 장면이 유독 많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 영화는 걷는 영화’라고 했다. 걸을 때 생기는 에너지를 영화로 가져오고 싶었다. 내가 걷기를 워낙 좋아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걷기는 내게 유일한 운동이자 환기의 방편이다. 내 안에 쌓인게 많을 때면 하루 9~10시간도 걷는다. 세 남자와 만나는 은희의 감정이 그녀의 걸음걸이에 그대로 드러날 거다. 걸을 때 재즈 풍의 음악을 덧입혀 리듬감을 만들었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2011)처럼 공간도 보여주면서 음악도 넘치는 영화면 좋겠더라.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도 재밌다.
한정된 시간 안에 사건이 일어난다는 설정을 좋아한다. 그런 내용으로 스릴러나 하드보일드한 장르물을 해보고 싶다. 5월 말쯤 6회차 정도의 장편을 찍을 예정이다. 카페 안에서 오전부터 오후까지 벌어지는 이야기로 임수정,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네 여배우가 주인공이다. 옴니버스식 구성인데 어떻게 나올지 나부터도 흥미진진해진다.
글 정지혜·사진 박종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