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시몬>(1999) 이후 장편 극영화를 만들기까지 18년이 흘렀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이유는 단순하다. 영화 제작에 필요한 투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처럼 국제적으로 촉망받던 감독이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투자를 받지못했다는 점이 놀랍다.
구로사와 아키라같은 거장 감독조차 투자를 받지 못하고, 그에 따른 충격으로 자살 시도까지 하지 않았나. 영화감독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시간이 내 경우에는 유독 더 길었을 뿐이다.
이번 영화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초봄이었을 거다. 화창한 날씨에 산책을 하며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하나같이 공허한 얼굴을 하고 있더라. 하지만 그 텅빈 얼굴 속에서도 타인과 교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다 알 수 있을 것만 같으면서도 온전히 보이지 않는, 거리의 얼굴들로부터 받은 인상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두 남녀가 같은 꿈을 통해 교감의 가능성을 찾는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칼 구스타브 융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연결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영화도 융의 생각과 비슷한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문화가 각기 다른 세상 속에서,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적 배경으로부터 시적인 신비로움을 이끌어낸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영화의 시각적 콘셉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법하다.
처음 이 영화를 구상하며 촬영감독에게 강조했던 말이 있다. 기존의 어떤 영화와도 다른 비주얼을 보여주되, 그 영상은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불타오르는 열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인터뷰 장소에 놓여있던 <화양연화> DVD를 가리키며) 바로 이 영화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운 좋게도 지난주에 홍콩에서 왕가위 감독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가 내 영화를 보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줘 무척 행복했다. 더불어 영화 속 꿈의 공간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기보다 실제적이고 자연스럽게 구현하고 싶었다. 마치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공간처럼, 현실감있는 장소로 표현하는 게 내게는 중요했다.
두 남녀가 처음 만나게 되는, 영화의 주요 공간을 가축 도축 공장으로 설정한 이유는.
멋진 현대사회에 숨겨진 잔인함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살장의 모습도 더럽고 무섭고 끔찍하기보다 최첨단 기술을 갖춘 문명화된 장소로 설정했다.
주인공 마리아와 앙드레, 도축장의 가축, 두 남녀의 꿈 속 사슴의 표정은 마치 하나의 캐릭터처럼 종종 서로 닮아 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라고 생각한다. 인간도 결국은 동물이 아닌가. 이 영화를 통해 관찰자로서 동물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관객이 직접 동물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길 바랐다. 마치 소의 입장에서 인간의 말소리를 듣고, 인간이 햇빛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소가 하늘을 응시하는 것처럼.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종족과 성별, 문화와 정체성의 다름 속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건 당신의 전작을 아우르는 중요한 관심사인 것 같다.
내가 고민하는 소통의 문제는 비단 타인과의 교감에 대한 것뿐만은 아니다. 자기 자신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닫아놓고 사는 것 같다. 난 늘 스스로에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온전히 충만한 삶의 형태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이 영화 역시 그러한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글 장영엽·사진 최성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