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톨로지 상영작은 시간을 이긴 영화의 정신이 담긴 작품을 소개한다. 시대적 탄압에 맞선 비판적 실험정신을 이어나간 영화인들의 초상이 새겨진 작품을 통해 영화의 미래를 가늠할 좋은 기회다. 영화제를 조명한 이례적인 작품 <익스페리멘탈>은 벨기에의 해안도시 크노케의 텅 빈 카지노에서 1949년부터 1974년까지 비정기적으로 5차례 열린 실험영화제 ‘EXPRMNTL’을 다룬다. 벨기에 로열 필름 아카이브 큐레이터로 일하며 영화제에 관여한 자크 드루의 과거 인터뷰 자료로부터 출발해 참여 예술인들의 영화제에 관한 기억과 상영작, 당대의 기록필름 등을 엮는다. 베트남전과 68혁명 등의 정치적 탄압과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 MTV 뮤직 클립으로 대표되는 매체 다변화의 시대상을 통해 실험성의 의미를 다각도로 측정한다. 영화는 ‘실험영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관한 아카이브 영상 속 과거의 대답과 오늘날의 대답을 연결한다. 이를 통해 실험영화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매니페스토>는 오늘날 실험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디스토피아적 선언에 가깝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부터 다다선언, 도그마 95등 다양한 사상의 선언들은 영화 텍스트의 전부다. 걸인부터 교사까지 13인의 인물을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의 퍼포먼스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선언은 때로는 장례식의 추도사로, 때로는 가족이 모인 식탁 위의 기도로, 때로는 펑크 록의 가사처럼 내뱉어진다. 이것은 폐기된 선언들의 예술적 쓰임에 관한 새로운 발견인가, 아니면 그것이 이미 시효가 다한 쓰레기일 뿐임을 자조적으로 읊조리는 마지막 발악일까. <매니페스토>가 영화에 무엇을 담아야하는가를 질문한다면 <시네마 퓨처>는 영화 매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디지털 시대의 시네마가 어떠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이제 고루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현재 진행형인 매체 변화에 관해 매번의 시점에서 계속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시네마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전방위적 예술가 토니 콘래드의 작품 세계를 탐구한 <토니 콘래드>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주는 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토니의 격언, “역사는 음악처럼 완전히 현재다”로 시작한다. 다큐멘터리는 마치 그의 격언을 실현하려는 듯 그의 역사적 작품이 점한 시간을 마구 흩뿌린다. <플리커>(1966) 등의 추상미술 작품과 교도소 시리즈 등의 설치미술 작품, 시청자 전화 연결을 통해 출연자의 숙제를 함께 푸는 라이브 쇼 <홈워크 헬프라인> 등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그의 기발한 난장은 그 자체로 샘솟는 영감의 원천이다.
<켄 로치의 삶과 영화>는 켄 로치에 관한 대조적인 평가들, 이를테면 천재와 루저, 위대한 운동가와 혐오스러운 소규모 영화, 리얼리즘의 마스터와 짖어대는 미친 맑시스트 등 대립된 수식어들이 어떻게 동시에 가능했는가를 탐구한 감독론이다.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한 그의 영화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민중사를 쓸 수 있겠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내놓은 그는 역사에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현재에 있는 감독이다. 배우, 프로듀서, 작가 등 켄 로치와 함께한 이들의 인터뷰가 삽입되는데, 이 영화에서만큼은 인터뷰가 그저 익숙한 다큐멘터리의 방식이 아니라 켄 로치 특유의 인간 존중 정신을 반영한 방식처럼 느껴진다. 그의 영화를 두고 “카메라로 겸손함을 불러들인다”는 동료의 평가는 정확하다. 그가 자신의 부드러움으로 어떻게 매우 강건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지 주목해보자.
영화에 있어서 촬영의 중요성을 알고 싶다면 카를로 디 팔마와 작업한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 될 것이다. <카를로 디 팔마의 영화세계>는 루치노 비스콘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우디 앨런 등 세계적인 감독들이 사랑한 촬영 감독 카를로 디 팔마를 조명한다. 이 영화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그의 미망인 아드리아나 디 팔마가 그의 영화세계를 탐구하는 운동체로서 등장한다. 감독의 말과 함께 감독을 기억하는 이들, 그가 참여한 영화들을 엮는 가운데 흑백영화에서 안토니오니와 함께 색채 영화로 넘어가는 과정과 우디 앨런의 제안으로 뉴욕을 방문하면서 뉴욕에서 자신의 고향과 비슷한 색채를 만나는 과정이 중심축을 이룬다.
에토레 스콜라 감독은 카를로 디 팔마에 관해 스토리를 이해하는 드문 촬영감독이었으며 로마의 정신을 표현하는 촬영감독이었다고 극찬한다. 그의 작품 세계를 따라가 보면 이탈리아 영화사, 그리고 유럽과 뉴욕을 잇는 대륙 횡단적 연결성이 드러난다.
에릭 로샤 감독은 <나의 아버지 글라우버 로샤>에 이어 다시 아버지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시네마 노보>를 내놓았다. 감독은 시대적 맥락과 떨어질 수 없는 시네마 노보 영화의 흐름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정작 자국 내에서는 관객의 외면을 받았던 현실 등을 조명한다. 전설적인 작품들에 기대는 대신 감독이 주체적으로 장면을 채집하고 이어 붙여, 작품 자체의 실험적 가치 역시 주목할 만하다.
<프리츠 랑>은 감독의 일대기를 참고해 픽션을 창조한 독특한 작품이다. 프리츠 랑이
김소희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