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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거장을 꿈꾸는 신예들_‘모던 이탈리아 시네마 : 재생의 기운’ 상영작 9편 소개
2017-04-30 09:53:00

21세기 이탈리아 영화계를 이끄는 두 명의 감독은 파올로 소렌티노와 마테오 가로네다. 이들은 바로 윗세대인 난니 모레티와 로베르토 베니니를 잇는 이탈리아 영화계의 대표 작가로 평가된다. 소렌티노와 가로네가, 그리고 모레티와 베니니까지, 이들이 선배 영화인들에 버금가는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을 것 같다. 이를테면 1960년대의 펠리니와 안토니오니, 1970년대의 파졸리니와 베르톨루치를 떠올려보라. 그래서 이탈리아 영화계는 ‘퇴조’의 비판에 시달린다. 저 멀리 ‘세 거장’(로셀리니, 데시카, 비스콘티)이 활약하던 네오리얼리즘과 비교될 때는 ‘모던 이탈리아 시네마’는 미미한 존재처럼 비치기도 한다.

알리체 로르바케르, 가장 돋보이는 신예

다행스러운 것은 여전히 소렌티노와 가로네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영화계에 새로운 인재들이 계속 등장하는 점이다. 이번 전주영화제의 ‘모던 이탈리아 시네마: 재생의 기운’ 특별전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신예들의 활약을 소개하고 있다. 아홉 감독의 아홉 편이 상영되는데, 모두 칸국제영화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등 신예들의 등용문을 통해 주목을 받은 작품들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알리체 로르바케르다. 지금까지 장편 두 편을 만들었고, 두 작품 모두 작가로서의 독특한 영화세상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이번의 상영작은 장편데뷔작인 <천상의 육체>(2011)이다. 칸국제영화제의 ‘감독주간’에서 소개됐다. 13살 소녀의 성장기 영화인데, 소녀의 일상을 다루는 섬세한 감각과 이탈리아 사회의 부조리를 성찰하는 깊은 통찰력이 맞물려 있다. 남부 이탈리아의 저개발의 상태, 부패한 종교와 성직자들, 교회의 경제적 지원에 의존적인 주민들의 타락 등이 지금 막 소녀에서 성인으로 발돋움하려는 주인공의 순수함과 충돌하는 내용이다. 그 충돌에서 느끼는 아픔, 말하자면 급속하게 부패해가는 세상을 바라봐야하는 고통은 이탈리아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로르바케르는 배우 알바 로르바케르의 동생인데, 언니를 캐스팅하여 만든 두 번째 장편 <경이>(2014)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그랑프리)을 받았다. 역시 개인과 공동체의 고통을 아우르는 독특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페데리카 디 자코모의 <우리를 구하소서>(2016)도 ‘비정상의 종교’를 다룬다. 엑소시스트에 의해 지배되는 시칠리아의 어느 교회가 배경이다. 교회는 ‘신의 전당’이기보다는 어이없게도 악령을 쫓는 주술의 사원처럼 변해있다. 실재와 허구를 섞은 다큐드라마 형식을 빌려, 내용의 현실성을 높여 놓았다.

다큐멘터리는 이탈리아 영화의 오래된 전통이다. 최근엔 잔프랑코 로지가 <성스러운 도로>(2013)로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해상화재> (2016)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프란체스코 문지의 <폭풍의 낙원>(2016)은 ‘납의 시대’로 불리는 1970년대 이탈리아의 폭력적인 정치상황을 주목한 다큐멘터리인데, 전부 당대의 자료화면을 편집하여 만들었다. 독특한 점은 자료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유명인이 아니라 거의 다 평범한 시민들이란 것이다. 좌파와 우파를 가릴 것 없이 폭력에 의존했던 당시의 정치상황으로, 현재의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를 다시 성찰케 하는 작품이다. 한편 유리 안카라니의 <더 챌린지>(2016)는 아프리카 사막 배경의 다큐멘터리인데, 시각적 표현력에 주목한 대단히 미학적인 작품이다.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사회성 짙은 테마를 담고 있는 작품이 <지중해>(2015)이다. 최근에 자주 다뤄지는 아프리카 출신의 불법 이주민 이야기다. 이주민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적대감’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이탈리아 영화의 다큐멘터리 전통

사베리오 코스탄초는 멜로드라마에서 제법 이름을 알린 감독이다. 부친이 워낙 유명한 방송인(마우리치오 코스탄초)여서, 데뷔 때부터 필요 이상의 폄하와 질투를 받은 면이 있다. 이번에 상영되는 <소수의 고독>(2010)이 베네치아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되면서,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새삼 인정받기도 했다. 가족 사이의 갈등에서 가해자의 죄의식에 빠진 남성과 피해자의 상처를 안고 있는 여성 사이의 오래된 관계를 그린다. 죄의식(남성)과 두려움(여성)의 기억에 죄수처럼 갇혀 있는 주인공들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섬세한 감각이 돋보인다. 코스탄초는 멜로드라마 감독으로는 오랜만에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그의 최근작이 우리에게도 소개된 <헝그리 하트>(2014)이다.

클라우디오 조반네지 감독의 <플라워>(2016)도 멜로드라마다. 사실상 집에서 버려진 10대 범죄자들이 주인공이다. 소년원에서 우연히 만난 두 10대의 사랑 이야기다. 그럼으로써 집에서 또 사회에서 소외된 10대들의 삶의 조건이 저절로 드러나 있다.

현실과 환상을 섞은 초현실적인 작품들도 눈에 띈다. 알레산드로 코모딘의 <행복한 날이 곧 올 거야>(2016)는 ‘탈출’에 관한 이야기다. 전쟁(언제인지 분명하진 않다)에서 탈출한 두 병사의 이야기, 그리고 늑대와 소녀가 함께 살았다는 전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어느 처녀의 이야기가 연결돼 있다. 늑대가 출몰하는 산속에서 부친과 함께 고립된 채 사는 처녀도 탈출을 꿈꾼다. 그가 산속에서 ‘늑대인지 병사인지’ 모를 상대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급변한다. 코모딘은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신인 최고상을 받은 <자코모의 여름>(2011)으로 이미 전주영화제에 소개된 적이 있다. 피에트로 마르첼로의 <상실과 아름다움>(2015)도 초현실적이다. 갓 태어난 소 버팔로를 잘 키워줄 목동에게 데려가는 내용인데,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아름다움과 잃어버린 것(상실)이 모두 드러나는 작품이다.

지금은 알리체 로르바케르가 앞서고, 사베리오 코스탄초, 알레산드로 코모딘이 뒤쫓는 형국이지만, 이들 가운데 누가 또 앞으로 치고 나올지는 모를 일이다. 그 경쟁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한창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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