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팬디드 시네마’ 섹션은 2013년까지 유지되던 ‘영화보다 낯선’ 섹션을 영화제 조직의 변경과 더불어 개편한 프로그램으로, 영화매체의 미학적, 물질적 경계를 확장하는 동시대 작품 소개를 지향해 왔다. 작년 한 해 서구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필름 코멘트>에서 선정하는 북미지역 미배급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나란히 선정된 마티아스 피네이로의 <허미아와 헬레나>(2016)와 다네 콤렌의 <북쪽의 모든 도시들>(2016)은 ‘월드 시네마스케이프’의 ‘스펙트럼’ 섹션에 배치되어도 무리가 없다. <허미아와 헬레나>는 피네이로의 첫 번째 해외 로케이션 제작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을 번역하기 위해 뉴욕으로 온 카밀리아의 이야기다. 맨하탄을 방황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의식, 작가의 세계와 작품의 세계의 혼융, 글쓰기와 영화제작 사이의 관계에 대한 반영 등은 실험영화보다는 내러티브 예술영화의 전통을 계승한 특징들이다. 맨하탄 한복판의 공원을 가로질러 카밀리아의 아파트로 관객을 안내하는 오프닝 장면에서 드러나듯 피네이로의 카메라는 고정 쇼트와 다양한 리듬의 카메라 운동을 적절히 조율하여 과거와 현재, 허구와 실재의 인상적인 연결고리를 짜나간다. 단편영화와 비디오 설치작품에서 경력을 충분히 쌓은 콤렌의 장편 데뷔작 <북쪽의 모든 도시들>(2016)은 몬테네그로의 호텔 폐허에 기거하며 조우하는 남자들의 의식과 제스처를 구 유고슬라비아의 공적 역사와 교차시킨다. 뚜렷한 목적을 찾기 힘든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풍경에 대한 세심한 응시는 예술영화의 관습이지만, 구 유고슬라비아의 기억이 서린 공공건물의 폐허에 대한 정사진 이미지들의 사용은 그러한 관습을 잠시나마 넘어설 만큼 조밀하고도 과감하다.
21세기 세계영화의 경향, 에세이 영화
카메라의 객관적 기록과 설명적 담론에 대한 신뢰를 넘어 시청각적 요소들의 적극적 활용에 몰두하는 실험적 다큐멘터리 또는 에세이 영화는 21세기 세계영화의 한 경향이자 익스팬디드 시네마의 애정 품목이다. 테오 앤서니의 <랫 필름>(2016)은 20세기 초 볼티모어의 인종 격리 주거정책과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의 쥐를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2015년 볼티모어의 인종차별 및 도시빈민 문제와 연결시킨다. 쥐 구제업자 및 빈민가 거주자와의 인터뷰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참여를, 사진과 지도는 과거 볼티모어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자료를, 그리고 구글 스트리트 뷰의 3D 그래픽 이미지는 쥐의 시점과 미래의 도시계획을 나타낸다. 앤서니는 이 모든 것들을 체계적으로 배치하여 에세이적 다큐멘터리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도시에 대한 탐구의 한 사례를 제시한다. <사막, 바다>(2017)는 하버드대에서 감각민속지(sensory ethnography) 다큐멘터리의 제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J. P. 스니아데키가 공동으로 감독한 작품으로, 사막의 풍경과 동물, 사람을 낮과 밤에 걸쳐 포착하는 16mm 카메라 이미지의 시적, 신화적 잠재력을 보여준다. 실험적 다큐멘터리의 유행에는 최근의 중국 독립영화도 합류한다. 극영화에서 출발한 리 홍치가 12년 동안 4편의 장편영화로 기획한 <훌리 바이블> 연작의 두 번째 작품 <훌리 바이블 II>(2016)는 도시 광장에서의 일상적인 대화와 행위를 멀리서 고정 카메라로 관찰한 장면을 인터넷에서 이슈가 된 일련의 사회적 사건들과 대비시키면서 현대 중국 사회의 표면과 이면을 노출한다. 올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받은 롱 꾸앙롱의 <아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2017)는 6세대 중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개척자인 우 웬광이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했지만 그 세대가 확립한 현장(on-the-spot) 리얼리즘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는다.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네 형제자매의 자살 사건에 대한 진실 자체가 아닌, 그 진실을 탐색하는 감독 자신의 혼란스러운 의식을 반영한 다양한 종류의 불투명한 이미지(어둠, 깨어진 저화질, 정지화면, 이중노출)들이 두드러진다.
실험적 다큐멘터리 중 ‘영화에 대한 영화’도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최근 실험영화의 새로운 흐름
실험영화에서 중요한 형식적, 기술적, 주제적 발자취를 남긴 감독들의 최근 장편 신작들 몇 편은 익스팬디드 시네마의 구조적 한계에 내재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사진과 영화, 애니메이션과 회화의 경계를 재편하는 연금술적 기법을 통해 주관적, 정신적 세계의 시각을 탐구한 파트릭 보카노프스키의 <태양의 꿈>(2016)이 가장 두드러진다. 물과 유리에서 비롯되는 빛의 산란 효과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중첩된 실사 이미지와 컴퓨터 그래픽을 다양한 속도로 오가면서 불확정적 영토, 변신하는 형상들, 유동적 공간들을 압도적으로 전개한다. 미국 흑인의 노동과 일상을 관찰적인 카메라로 주시해 온 케빈 제롬 에머슨의 <톤슬러 파크>(2017)에서는 작년 미 대선 투표소에 참여한 흑인 멤버들의 표정과 행위를 민주주의의 초상으로 전달한다.
김지훈 영화미디어학자, 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