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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보다 더 가깝게 <비공식 개강총회> 감독 류덕환
2015-05-01 10:52:00

Q. 대학 신입생 시절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못된 전통, 얼차례 등 왜곡된 조직 문화를 그리고 있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06학번)에 진학해서 학과 생활을 해보니, 이곳 또한 하나의 작은 사회 같다고 느꼈다.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누군가 영웅처럼 나서주길 바라는 마음과 그 사회 속에 조용히 묻혀서 살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리를 다루고 싶었다. ‘왜’라는 질문 앞에서 영웅처럼 나서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경험도 어느 정도 투영됐다.

Q.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갖게 됐나.

5~6년 전 졸업 즈음에 비공식 개강총회를 겪게 되는 주인공 종환(김종환)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처음부터 영화제에 출품하려 했던 건 아니고 그저 대학원 워크숍 과제로 시작했을 뿐인데 일이 점점 커졌다. 게다가 연출 공부를 하다보니 의미도 담게 되고 아이디어를 자꾸 더하게 되면서 지금의 영화가 완성됐다.

Q. 류덕환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항상 유쾌한 캐릭터가 연상되는데 이번 영화는 정서적으로 어둡고 결말은 모호하다.

처음에는 완전 막장 코미디로 구상했다. 그런데 이야기에 중점을 두다보니 분위기가 바뀌더라. 우리 모두가 사건의 연속에 놓여 있으면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게 하고 싶었다. 애매한 결말에 대해서도 관객들이 생각해볼 지점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Q. 배우의 경험이 연출자로서 현장에 있을 때 도움이 되던가.

여러 현장을 경험해봤으니 아무래도 현장에 능숙하긴 하다. 하지만 두 영역은 정말 다르다. 일단 내가 연출하는 영화에는 출연을 못 하겠다. 그래서 내가 디렉팅을 할 때 배우들 앞에서 절대로 연기를 하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배우로서 갖는 마인드는 인물에 대한 깊이를 최우선으로 하는데 연출자는 이야기 전체를 조명해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만 집중해서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마음가짐을 다르게 가져야 했다. 그럼에도 확실히 감정선을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출 전공자에 비해 감각적으로 포착해내는 것 같다.

Q. 첫 단편 <장준환을 기다리며>(2012)는 영화학과 학생들의 이야기이며,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2013)는 2~3분가량의 짧은 단편 4편을 묶어 만들었다. 뒤이어 지난해에 단편 <냉장고>(2014)도 만들었다고.

<냉장고>도 워크숍 과제로 시작했다. 주변에서 이 영화 먼저 공개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두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변해가는 냉장고의 풍경을 다룬 영화다. 10~12분 정도 되는데 카메라는 변해가는 냉장고의 모습만 보여준다.

Q. 자연스레 연애 이야기를 다루는 걸 보니 류덕환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OCN 드라마 <신의 퀴즈> 시리즈는 당신의 배우 인생에서 어른으로의 분기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이 드라마는 내게 중요한 일기장 같은 존재다. 처음 캐스팅 단계부터 한진우라는 캐릭터가 이상하게 잘 맞았다. 평소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하는 편도 아니고, 대사가 복잡하고 어려운데도 전체 연기 분량의 절반 이상을 애드리브로 꾸밀 정도로 작가 형이 나를 믿어줬다. 그러니 오히려 연극을 할 때와 유사한 감정선을 가져가게 되는 거다. 게다가 이제는 실제의 내 모습이 드라마 속에 때로 담기기도 한다.

Q. 감독으로 영어 이름을 ‘clown ryu’라고 썼더라.

실은 ‘광대’(clown)라는 단어를 ‘스타’보다 더 좋아한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비춰보면 나는 광대가 어울린다. 아직 화보 촬영이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어색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은 좋다. 홀로 빛나는 스타보다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광대의 삶을 살고 싶다. 물론 돈을 벌 수 있는 작업은 계속 해야겠지만 (단편 영화처럼) 관객과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작업도 이어가고 싶다.

출처: 씨네21 글: 김현수 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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