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벙대는 성격이지만 연기를 하면 진지해진다”는 김향기는 차분하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는 열여섯 소녀였다. <마음이>(2006)로 데뷔해 주로 귀여운 이미지의 배역을 맡은 것과는 달리 김향기는 꽤 어른스러웠다. “낯을 가리지만 한 번 친해지면 마음을 활짝 터놓기 때문에, 드라마 <여왕의 교실>(2013)에서 이미 친해진 새론이와 함께 연기를 하게 돼 좋았어요. <눈길>은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촬영 현장은 늘 수다의 장이었죠.” 공교롭게도 이날 김향기와 김새론은 같은 반지를 끼고 와, 또 한바탕 수다가 벌어졌다. 김새론과 함께 있으면 서로 다른 면이 많아 재미있다는 김향기는 “연기할 때 상대와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해요”라며 깊은 애정을 과시했다.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눈길>의 꿋꿋한 소녀 ‘종분’을 연기한 김향기가 작품을 선택하기 쉬웠던 건 아니다.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어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역사적 사실이고, 누군가는 표현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 위안부를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용기를 냈죠.” 김향기는 성실한 노력파다. “마음을 정한 후 자료들을 찾아보며 공부했는데, 그분들의 억울함과 고통을 깊이 느끼게 됐어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니 어려울 것 없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김향기는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내 안의 감정을 작은 것 하나까지 끌어내서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다. 욕심이 많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보고 싶다는 그녀는 최근 다중인격 역할을 맡아보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고. “최근 드라마 <킬미힐미> <하이드 지킬, 나>를 비롯하여 다중인격 캐릭터가 인기더라고요. 한 번에 여러 가지 역할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해보고 싶어요.” 이 사랑스러운 소녀가 연기할 다중인격 캐릭터는 어떨까. 누군가의 딸이거나 여동생이 아닌, 주체적인 배역을 맡고 싶어 하는 그녀의 욕심이 예쁘다.
출처: 씨네21 글: 이예지 사진: 백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