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미술을 이끄는 미술가 펑정지에가 배우로 데뷔했다. 그는 민병훈 감독의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에서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하는 주인공 펑정지에 역을 소화했다. 베이징을 기반으로 줄곧 그림만 그려온 그에게 영화 출연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런 그가 영화 속 펑정지에가 되기로 한 것은 민병훈 감독의 연출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일상에서 영감을 얻고자 하나 그러지 못해 무기력해지곤 한다. 이 영화는 이러한 괴로움을 영화적으로 포착하려는 것 같았다.” 현장에서의 펑정지에는 묵묵히 감독의 지시를 수용하는 편이었다. “이건 나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예술(가)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다. 나 역시 영화의 구성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의 이 말에는 예술가인 감독이 생각하는 바를 최대한 존중해주고자 하는 예술가 펑정지에의 배려가 포함돼 있다. “연기는 이번으로 족하다(웃음)”는 그는 2013년 문을 연 제주도의 개인 작업실에서 미술 작업을 이어간다. “사시처럼 눈동자가 밖을 향한 붉은 입술의 여인들 그림이 지난 20여 년간 활동해오며 만든 내 대표작이다. 이제 또 다른 연작을 준비한다. 심미적 가능성을 넓히는 작업을 이어가겠다.”
출처: 씨네21 글: 정지혜 사진: 백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