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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나약한 존재가 아닐까 <설행_눈길을 걷다> 김희정 감독
2015-05-05 10:38:00

Q. 전작들과 달리 여성이 아닌 알코올 중독에 빠진 남자가 주인공이다.

눈밭을 울면서 걸어가는 남자의 이미지가 뇌리에 맴돌았다. 거기에 중독자라는 캐릭터를 덧붙였다. ‘중독된 삶’이란 연출자라면 누구나 관심 가질 설정일 거다. 평소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던 개인적인 견해가 이야기에 반영됐다.

Q. 실제 중독자를 만나보기도 했나.

정신과 의사를 비롯해 여러 중독자들을 만나봤는데 착한 사람들이 많다는 인상이었다. 유리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어 남을 해코지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지없이 자기 주변마저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가족병’이라 부르기도 하더라. 가족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Q. 주요 배경인 눈 덮인 산과 수녀원 등 공간 설정에 공을 들였다.

요양원과 겸한 수녀원을 찾는 것보다 눈 덮인 산을 찾기가 특히 어려웠다. 작년 겨울에는 희한하게 눈이 별로 오지 않았다. 대관령 목장에 올라가도 눈이 없을 정도였으니.(웃음) 덕유산을 뒤져 겨우 찍었다. 눈발이 강하게 날려야 하는 장면을 찍어야 할 때 기적처럼 눈이 내렸다. 영화에도 기적에 관해 묻는 대사가 나오는데 기적을 체험하며 찍은 셈이다.(웃음)

Q.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게 편집된 것이나 플래시백 사용 등 구성이 복잡하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에서 유리창이나 거울에 비친 베로니카(이렌느 야곱)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차용하기도 했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보다 모호한 영화가 끌린다. 그러다보니 구구절절 설명하는 장면이 없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 의도를 잘 이해해주는 것 같다.

Q. 중독자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모성에 관한 영화로 읽히기도 한다.

후반부에 엄마가 어린 아들에게 목도리를 씌워주는 플래시백 장면이 있는데, 편집본을 보니 이전 장면도 엄마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이었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편집이었다. 우연하게도 영화가 어떤 방향을 보여준 것 같았다. 여담이지만, 실제 우리 엄마가 지나가는 행인으로 카메오 등장해서 그렇게 느껴진 게 아닐까.(웃음)

출처: 씨네21 글: 김현수 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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