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열아홉 소녀의 아슬아슬한 홀로서기
2021-05-02 10:00:00

열아홉 소녀의 아슬아슬한 홀로서기

<열아홉> 우경희 감독

소정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병 든 어머니와 살아가는 집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에게 집은 언젠가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가 된 그는 불안해하는 동시에 꿈을 찾아 나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장편극영화 제작 지원 프로젝트인 이 영화는 집을 벗어나고 싶은 열아홉 소녀 소정의 아슬아슬한 내면을 세심하게 담아내는 성장 이야기다. 특히 소정이 공장 실습에서 만난 남자친구인 성현과 함께 만드는 음악은 서사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소정에게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는다. 영화를 연출한 우경희 감독은 “단편과 호흡이 다르다 보니 시나리오 작업부터 후반 작업까지 영화의 모든 공정이 쉽지 않았다”고 첫 장편영화를 만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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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고3 소녀의 이야기인데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독립하고 싶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학 시절 집에서 나와 자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때 바라던 자취 생활을 하게 됐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좋았다.

개인적인 경험이 이야기에 많이 반영된 셈이다.

음악을 하는 게 꿈인 소정처럼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 음악을 듣고 미니홈피 같은 온라인 공간에 일기나 글을 쓰는 걸 좋아했다. 꿈 많은 소녀가 독립해 자유롭게 살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야겠다 싶었고 아이템을 발전시키다 보니 지금의 얘기가 된 것 같다.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을 2008년으로 설정한 이유가 뭔가.

영화에서 집이 중요한 소재다. 소정과 그의 남자 친구인 성현 모두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개인적 차원으로만 다루고 싶지 않았다. 두 주인공이 집을 굴레처럼 느끼는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시기가 2006~2008년 시기였던 것 같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우리나라 경제에도 영향을 끼쳤고, ‘깡통 전세’나 '하우스 푸어’ 같은 말이 나왔던 것만큼 집 문제 때문에 힘들어한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다. 무엇보다 2008년은 내가 잘 아는 시기이기도 했다. 현재 10대들이 어떤 성향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시대의 10대를 다루기보다는 내가 경험한 10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참고했던 레퍼런스가 있나.

한 번도 목장 울타리 밖을 나간 적 없는 젖소들이 생애 처음으로 풀려나자마자 큰 체구와 어울리지 않게 폴짝폴짝 뛰며 목장 밖을 질주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소정이 또한 혼자가 됐을 때 그 소들처럼 기분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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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의 엄마, 공장 사장 등 소정의 주변 어른들은 기댈만한 사람이 없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소정이 어른들에게서 도움을 받거나 영향을 받아서 성장하기보다 성현 같은 또래와 관계를 쌓아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소정의 독립이 불완전한 자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소정은 작은 자유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거다. 그 과정들을 겪고 나서야 성장하는 거다.

성현을 만나면서 소정은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고, 덩달아 표정이 밝아진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를 밝은 연애 이야기로 소개하곤 했다. 소정의 성장 이야기인 동시에 연애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정이 성현과 연애를 하면서 성장하니까. 성현뿐만 아니라 옆집 할머니와의 관계를 통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

성현과 함께 만드는 음악은 소정의 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다. 소정과 성현, 두 사람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2008년이 배경인 이야기라 당시 유행했던 음악을 보여주는 게 관건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은 No air 음악감독님이 직접 작곡한 곡들로, 로우 파이(Lo-Fi) 계열의 스타일로 구성됐다. 말씀대로 두 주인공이 음악을 작업하는 이야기의 특성상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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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질문도 드리면 회사 생활을 하다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어릴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연극영화과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영화와 방송이 다르다는 사실은 학교에 간 뒤 알게 됐다. 대학을 졸업한 뒤 회사 생활을 하다가 영화를 너무 찍고 싶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했다.

좋아하는 감독은 누군가.

구로자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 에드워드 양 감독을 특히 좋아한다. 일본의 모로호시 다이지로 작가의 만화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는 인생 만화다. 모로호시 다이지로 작가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이 만화는 <열아홉>을 만드는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열아홉>은 극장 개봉을 앞둔 것으로 알고 있다.

6월 말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생각하고 있는 아이템이 있는데 구상하고 있다.

글 김성훈·사진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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