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밤, 세상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다
: <아웃사이드 노이즈> 테드 펜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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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다니엘라는 매일 밤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는 일자리를 위해 면접을 보고 틈틈이 친구들을 만나며 불안을 잠재우려 애쓴다. 다니엘라의 친구인 미아는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이며, 나타샤는 비엔나로 이주를 생각하고 있다. 세 사람은 전화와 채팅으로 대화하는 대신 직접 뉴욕과 베를린, 비엔나를 오가며 서로의 근황과 고민을 나눈다. <아웃사이드 노이즈>는 <숏 스테이> <고전주의 시대> 등을 연출한 테드 펜트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 네편 중 한편으로 선정됐으며 계속해서 이동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의 삶을 잘 담아낸 작품이다. 길을 걷고, 파티에 참석하며 새로운 사람과 연을 맺는 과정이 한없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인물들이 나누는 현실적인 고민은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하고 귀 기울이게 만든다. “실험 정신이 담긴 영화를 선호하는” 테드 펜트 감독은 전작에 이어 <아웃사이드 노이즈> 역시 직관적으로 촬영한 푸티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쉽게 한국을 방문하지 못한 테드 펜트 감독과 화상으로 나눈 대화를 전한다.
이미 여러 차례 전주영화제를 방문했지만,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에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사실 <아웃사이드 노이즈>는 완성한 지 꽤 된 영화다. 그래서 마치 죽어있던 작품을 누가 다시 발견해서 꺼내준 기분이 든다. (웃음) 이번엔 영화제를 직접 오지 못해서 관객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 이야기인가.
나는 주로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다. 5년 전 주인공 중 한 명인 미아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미아가 갑자기 즉흥적으로 석사 과정을 밟기로 했다고 하더라. 일차적으로 흥미가 생긴 지점이다. 이후 다니엘라가 자신이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마침 둘이 아는 사이이기도 하니, 둘을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작에선 주로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해왔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나.
이번엔 좀 달랐다. 다니엘라, 미아는 배우는 아니지만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고 공연, 무용계에서도 활동 중이다. 나타샤는 연극 활동을 하는 전문 배우다. 처음 이들을 알게 된 것도 캐스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미아는 뉴욕에 있는 내 룸메이트의 친구였고 다니엘라는 그리스로 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만났다.
뉴욕과 베를린, 빈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이 도시들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뉴욕에서 촬영을 시작한 건 다니엘라가 뉴욕으로 잠깐 휴가를 왔기 때문이다. 왔으니 뭐라도 찍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다. (웃음) 마침 미아는 베를린에 있고, 다니엘라가 빈에 있으니 이 세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를 방문하는 상황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배우들이 대사에 관해 의견을 내는 등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들었다.
처음에 스크립트를 보여줬는데 다들 끔찍하다고 이걸로는 절대 영화 못 찍는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다방면으로 논의를 해 시나리오를 수정했는데 내가 쓴 것보다 훨씬 좋더라. (웃음) 작업 과정은 초고를 쓴 뒤 촬영 일주일 전에 공유하고, 다룰 주제를 세분화해 배우들이 의견을 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배우들이 영화에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줬나보다.
맞다. 이번 영화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배우들이 다방면으로 참여했다. 연기를 경험했든 아니든 누구나 자기 본연의 색을 갖고 있고 그것을 연기, 영화를 통해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중 인물들은 어느 한곳에 정착해 있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한다.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방문하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신들이다. 굉장히 직관적으로 촬영하는 편이라 촬영할 땐 몰랐는데, 나중에 편집하면서 사실 내가 인물들이 쉼 없이 움직이는 그림을 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타샤, 미아, 다니엘라 등은 전화나 채팅으로도 가능한 이야기들을 직접 만나서 하길 선호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촬영된 영화라 가능했다. 하지만 나도 전화나 화상 회의 서비스 등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팬데믹 상황인 현재에도 말이다. 그런 개인적인 성향과 생각이 반영된 것 같다.
주인공들이 참석한 파티에 참석자 중 한 명으로 감독 자신이 등장한다. 자신의 영화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해당 신에서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남자가 한 명 필요했다. 그런 역을 맡길 사람이 당시에 생각이 안 나서 직접 했다. (웃음) 내 대사도 예전에 했던 이야기들을 일부 반영해 만든 것이다.
16mm 필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까.
작업할 때마다 내 영화가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상황을 가정한다. 큰 스크린에서 구현되는 컬러, 입자, 질감 등이 마음에 들어서 계속 16mm필름을 활용해 작업하게 된다.
조명도 주로 자연광을 사용했다.
인공조명을 사용한 건 두 세 신밖에 없을 거다. 완벽하게 통제된 상황을 카메라에 담기보다, 자연광에 의해 색이 변화하는 이미지를 촬영하는 게 훨씬 재밌다. 예측하지 못한 그림이 펼쳐지는 게 좋아서 자연광을 쓰길 좋아한다.
제목이 <아웃사이드 노이즈>인 이유는.
프랑스 철학자 엠마뉴엘 레비나스의 <존재에서 존재자로>란 책에서 불면증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 가만히 있다 보면, 밖에서 일어나는 주변의 소음들이 마치 존재의 웅얼거림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 그걸 ‘아웃사이드 노이즈’라고 하는데 그게 마음에 들어서 사용했다. 영화 초반에 불면증을 앓는 다니엘라가 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책에서도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 편인가. 전작 <고전주의 시대>도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책을 많이 읽긴 하지만 반드시 영화에 쓴다고 하긴 어렵다. 다만 영화에 관한 아이디어가 항상 추상적으로 있는 편인데 책에서 읽은 구절, 책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들과 연결 지으며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촬영을 이어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엔 어떻게 영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나.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굳이 억지로 급하게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때를 기다리고 있다. 책을 최대한 많이 읽고 아이디어를 수집하면서 다시 상황이 안정되기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 최근 관심 가는 주제는, 아직 정리되진 않았지만 ‘우정에 대한 불안’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조현나·사진 제공 전주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