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되지 못한 앙금을 찾아서
: <코리도라스> 류형석 감독
<코리도라스>는 시작과 함께 관객을 휠체어에 태운다. 그 덜컹임에 놀라기도 잠시, 우리는 매일같이 이 자리에서 자기만의 질주를 하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스피드를 즐기며 시를 쓰는 그는 20년 넘도록 시설에서 살다 자립한 뇌성마비 장애인 박동수. 그는 글만으로 온갖 감정을 표현할 수 없어 친구를 찾아가고, 조명 아래서 춤추고, 물고기를 집에 들인다. 그러면서 시가 되지 못한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 풀어놓는다. 그가 키우는 열대어의 이름에서 영화 제목을 따온 류형석 감독은 전작 <그루잠>에서 소아암 투병을 해온 여성이 호랑이 그림을 그리는 여정을 따라갔다. 각자의 고통을 견디는 와중 예술에 반응하고 창작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류형석 감독을 만나 박동수와의 시간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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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도라스>의 주인공 박동수 씨는 어떻게 만났나.
대학생이던 2011년에 장애인 목욕 보조 활동을 했다. 그때 동수 형을 처음 만났다. 매주 토요일 동수 형 집에 방문해 목욕을 하고 점심을 먹고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셈이다. 친구로서 그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우선 성격이 잘 맞는다. 그리고 동수 형은 처음 봤을 때부터 시를 써왔다. 한 글자씩 키보드를 쳐서 시를 쓰는 시간이 비장애인에 비해 많이 걸려 힘든 작업임에도 오랫동안 시를 써왔다. 형의 시가 백일장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시집에 묶이기도 했지만, 언뜻 보면 큰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남의 시선과 상관없이 반복해오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렇게 반복하는 것에 우리 삶의 비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어떻게 했나.
형이 예전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다. 컴퓨터로 글도 쓰고, 게임도 하고, 포토샵도 했다. 내가 영화 관련 학과에 다닌다고 하니 영상에도 관심을 보여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에 나오는 동수 형의 유튜브 채널 영상들도 다 그가 직접 만든 것이다. 그러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중에 같이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얘기했었는데, 내가 전역 후 찾아간 동수 형이 열대어 코리도라스를 키우고 있더라. 그렇게 형성된 집안의 독특한 분위기나 조명, 소리를 영화로 찍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또 언젠가 동수 형과 술을 마셨는데 형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자원 활동을 하면서는 볼 수 없었던, 그의 시에도 드러나지 않던 모습이었다. 감사와 사랑의 시어로 가득한 글을 써온 그가 차마 시로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영화를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촬영 기간은 어떻게 되나.
2019년 말부터 1년 정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동수 형과 시간을 보냈다. 서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나갈지 계속 이야기하면서 일상을 함께 했다. 촬영을 했다기보다 형이 혼자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휠체어를 움직이고, 씻는 방식을 직접 보고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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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 씨와 어떤 영화를 만들자고 이야기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 형은 이 사회에서 장애인으로서 갖는 문제의식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또한 형이 시를 쓰는 것에 관해 말해보자고 했다. 분노를 어떻게 시로 표현할 수 있을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형이 부정적인 감정을 시로 쓰기 힘들어해서 무용 같은 몸짓으로 이를 표현해보는 게 어떨까 얘기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건 나의 욕심이었다. 형은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휠체어를 움직이거나, 화려한 불빛을 내며 달리고, 때로 급하게 행동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해오고 있었다. 내가 괜히 영화적인 상징을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박동수 인생의 특별한 한 순간을 포착하기보다 그가 일상에서 반복하는 것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생각으로 촬영했다
휠체어 바퀴에 카메라를 달 거나 어안렌즈로 컴퓨터 모니터를 찍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화면에 변화를 줬다.
박동수라는 인물을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이미지와 사운드를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성격 급한 그의 속도감, 그가 좋아하는 화려한 불빛을 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어안렌즈의 경우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코리도라스가 박동수를, 박동수가 컴퓨터에 쓴 것을 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곧 나의 시선이라고 여기며 편집했다. 박동수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했고, 코리도라스에 상징을 부여하고 싶었지만,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열대어 코리도라스도 그저 예쁜 것을 곁에 두고 싶어서 키웠다고 하지 않나. 그 간극을 곱씹으며 찍었다.
후반부에 갈수록 동수 씨의 생각을 표현하는 자막이 자주 등장하는데.
50편이 넘는 시를 영화에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한 구절을 보여줘야 할지, 전문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했는데, 시를 보여주기보다 동수 형이 시에 대해 한 해석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삶 자체가 시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가 쓴 시와 그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자막에 넣었다.
엔딩 크레딧에 박동수의 이름과 공동으로 뜨는 이름이 그의 활동보조 김진산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띄운 이유가 있다면.
동수 형은 일주일에 세, 네 명의 활동보조와 함께한다. 지금은 활동보조를 하고 있지 않지만 당시 진산이가 동수 형의 가장 오래된 보조였다. 그가 동수 형을 대하는 태도나 분위기가 좋았다. 형을 너무 맞춰주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친하게 지내는 관계가 재밌었다. 그래서 진산이가 있을 때만 주로 촬영을 했고, 영화에도 많은 역할을 해줘서 두 사람을 같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태도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나.
지금껏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찍어왔다. 어릴 때는 막연히 누군가의 삶을 찍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첫 영화 <그루잠>의 주인공을 만나면서 내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오직 단면이라는 걸 알게 됐다. 오랜 시간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을 정성껏, 진지하게 고민해서 카메라로 담겠다.
글 남선우·사진 최성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