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FF 26th LOGO

얼굴이 곧 하나의 풍경이다 <엘 모비미엔토> 벤자민 나이스타트 감독
2015-05-06 10:44:00

<공포의 역사>(2014)로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한 아르헨티나의 벤자민 나이스타트 감독이 다시 한 번 전주를 찾았다. 올해 그가 선보인 작품은 전주국제영화제의 대표 프로그램인 삼인삼색을 통해 제작된 <엘 모비미엔토>다. 영화는 1835년 아르헨티나에 등장한 독재자 세뇨르와 그의 예고된 폭정 앞에 불안해하는 농민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등장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그의 관심은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인 공포심에 가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있지 않나. 그렇게 되는 데는 공포심이 크게 작용했을 거다. 실체는 없지만 사람들의 내면에 실재하는 공포에 주목하고 싶었다.”

감독은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인공 세뇨르의 캐릭터 구축에 공을 들였다. “아르헨티나의 폭군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 쿠데타로 정계에 진출한 후안 페론 등의 연설문과 몸짓을 적극 참조해” 세뇨르의 대사와 행동에 반영했다. 하지만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을 그대로 극 안으로 끌고 들어온 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아르헨티나 사회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정치인이 될 능력도 에너지도 없다. 다만 세뇨르를 통해서 공포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분출시켜보자는 생각이었다. 내게 영화는 문제적 사회로부터의 일종의 액막이인 셈이다.”

공포라는 감정을 잘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장치들도 눈에 띈다. “색(色)은 생(生), 흑백은 죽음을 뜻한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의미를 살려” 흑백으로 화면을 처리했다. 이어서 감독은 “얼굴이 곧 하나의 풍경이다. 인물들의 광기를 관객에게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얼굴 클로즈업 숏을 많이 썼고, “관객의 감정에 타격을 주기 위해” 1980년대 신디사이저 음악을 적극 활용했다고도 말한다. 영화의 내용 못지않게 형식적인 면에 대한 고민을 철저히 한 덕에 극은 시종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차기작에서도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 하에 벌어진 대학살의 공포를 다룰 예정이다. 자기 색깔 확실한, 무서운 신예가 또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출처: 씨네21 글: 정지혜 사진: 백종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