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쓰는 편지: "딱 한 편만 더 만들어보고 말씀드릴게요"
2021-12-09 11:00:00

<성적표의 김민영> 임지선 감독 드림
2021-12-09

[함께 쓰는 편지]?"딱 한 편만 더 만들어보고 말씀드릴게요……."
<성적표의 김민영>?임지선 감독의?연말 인사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 12월의 뉴스레터는 안부를 나누는 자리로 꾸렸습니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빛냈던, 여러분께서 많은 사랑을 주었던 작품의 연출자와 연말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지요.

12월 두 번째 편지의 주인공은 <성적표의 김민영> 임지선 감독입니다.??

<성적표의 김민영> 트레일러
인생의 한 시기에 만나, 불현듯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세 친구의 이야기. 지난 번 공동연출자 이재은 감독의 편지를 소개하면서 썼듯 여러 영화제에 초대되며 공사다망한 한 해를 보냈던 <성적표의 김민영>에, 그사이 새로운 경사가 있었습니다.?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는 것까지는 이미 알고 계시지요? 거기서 <성적표의 김민영>이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았습니다.?마침 기회가 좋게 되었어요. 이 지면을 통해 여러분과?함께 축하할 수 있어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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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감독님, 올해 어떻게 지내셨을까요??


안녕하세요, 감독님. 모시기 어려웠습니다만.
안녕하세요. 다른 이유 없이, 제가 말주변이 너무 없어서 가급적 저의 단점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저 말고, 통통 튀고 재밌고 말 잘하는 우리 배우들을 인터뷰해 보는 건 어떠실지……?
다음번엔 꼭 배우들을 모시겠다. 전주국제영화제 때 첫 스크린 상영을 기억하는지?
후반 작업 때 너무 많이 봐서 큰 화면으로 보는 게 크게 다를까 싶었는데, 일단 극장 환경이 좋았고, 많은 분과 함께 나 또한 관객의 입장으로 보니 너무 달랐다. 처음으로 인물의 감정에 온전히 몰입해서 봤고, 후반부에는 울컥한 마음도 들었다. 관객분들 반응을 꼼꼼히 살피고 싶은 마음에 수첩에 필기하면서 보려 했으나 어느 순간 영화 자체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이후 다른 곳에서 볼 때는 사실 그 정도의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다시 이성적으로 접근하게 되고, 아쉬운 부분들만 눈에 들어온다. 그런 점에서 전주에서의 상영은 귀한 경험이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시상식, 임지선 감독 수상 소감
작품이 올해 많은 영화제에 갔다.
운이 좋게도.?영화제 초청 소식이 있을 때마다 재은이랑, 영화제에서 좋아하는 영화인가 보다 하는 말을 많이 했다.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덕분이다. 수상 이후 맛집 인증 마크를 얻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미 맛있을 거야 하고 호감을 갖고 찾아주시는 분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다들 맛있다던데 그 정도는 아닌데?! 하는 매운 평도 많이 봤다.?
후기를 찾아보는 편인지?
처음에는 <성적표의 김민영>의 성적표를 확인하는 일 같아서 막연하게 두려웠다. 막상 후기들을 찾아보니 영화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기억을 써주신 게 많아서 그게 너무 감동이었다. 그 이후로는 올라오는 족족 다 찾아봤던 것 같다. 재은이랑 같이 찾으니 검색력도 두 배다. 물론 찾게 되는 악평도 두 배……. 여하튼 영화가 전체적으로 빈틈이 많고 결말도 열려있는 채 끝나는데 관객 후기를 통해 비로소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에 남는 후기가 있다면.
대부분의 후기에서 정희, 민영 캐릭터가 주로 언급된다. 근데 어떤 분께서 ´나 같은 수산나에게 필요한 영화´라는 평을 남겨주셨다. 짧은 후기임에도 많은 궁금증을 갖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왜 수산나라고 생각하시는지,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지더라.?
작품의 근황을 알려주신다면.
제목을 줄여서 ´김민영´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감독과 배우들은 못 가지만 김민영은 해외 영화제도알아서 잘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다. 12월 중에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올해 마지막 상영을 하게 될 것 같고, 개봉은 내년 상반기쯤으로 예상한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시상식 당일, 임지선 감독
감독님의 근황도 예의상 여쭤본다.
, 감사하다. 영화학교에 다니고 있고, 주말엔 알바를 한다. 그리고 간간이 김민영 도와준 스태프와 동기들 현장에 나가고 있다. 다음 작품은 아마 학교 정규과목으로 찍는 단편영화가 될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영화제 소식이 들려온다면 놀람과 동시에 GV 할 생각에 몇 주 전부터 긴장하기 시작한다. 혹여나 인터뷰를 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사진 촬영도 같이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감사한 일들인데 복에 겨운 것 아닌가?
맞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향형 인간으로서 좋으면서도 가장 걱정스러운 일이다. 진심으로 스피치 학원에 다녀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혹시라도 내 발성이 전과 달라진 것 같다면 그건……. 그런 자리를 가질 때마다 작품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를 절감하게 된다. ´그냥´ 직감적으로 찍고 설정한 부분들을 논리적인 말로 풀어내는 게 어려운 것 같다. 부끄럽지만 관객분들의 평을 보고 거꾸로, 맞아 우리 의도는 저랬지 하고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별히 곤란한 질문이 있었는지?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도 공부하는 입장인데 어떤 말을 할 수 있지? 싶어서 당황했고, 뻔한 말만 횡설수설했던 것 같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딱?한 편만 더 만들어보고 말씀드릴게요……
공동 작업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 새롭게 들려줄 내용이 있는지.
지금은 거의 쓰진 않지만 시작 때 팀명이 있었다. ´한경희 에어프라이어´. 기름기 없는 담백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작은 포부를 담고 있는 이름이다. 나름 영화 공부 모임이기도 해서 새로운 회원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있는데, 가입 조건은 영화에 대한 게 아니라 ①용기가 없을 것②다른 사람의 눈을 10초 이상 마주치지 못할 것?이런 식이었다. 그 정도로 우리는 내성적이고 자신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가 어쩌다 장편영화를 만들었을까 싶다. 뭘 잘 모르니까 우리 방식대로 자유롭게 해나갔던 것 같다. 처음 재은이가 같이 하자며 준 단편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이 이야기라면, 내가 지금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할 수만 있다면 이 영화를 좋아해 주는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결과가 안 좋더라도 뭐든 남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작업하면서 이것만큼은 잘했다 하는 게 있다면?
이창동 감독님께서 영화의 90%는 캐스팅이라고 말씀하셨다. 준비 때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는데 이게 다 주아 배우, 서영 배우를 만나기 위해 그랬나 싶다. 새로운 배우들을 찾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점은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편집하면서 더 팬이 됐다. 덕질하듯 편집을 했다. 현장에서는, 여느 멋진 감독처럼 배우들과 많이 이야기하며 찍고 싶었는데 서툴러서 그러지는 못했던 것 같다. 주로 배우들이 우리가 어떤 걸 원하는지 들어주었다. 요구하는 연기의 톤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어려웠을 텐데, 두 배우 모두 ´덜어내는 경험´이었다고 좋게 말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끝으로,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인간은 살기 위해 너무 힘든 기억은 지운다고 했던가…….

지금까지 읽은 이 글은 정말 충격적이게도 셀프 인터뷰다.?

박찬욱 감독님 에세이집에 셀프 인터뷰 글들이 몇 개 실려있는데, 재미도 있고 옛 감성이 녹아 있다고생각해서 언젠가 글 쓸 기회가 있을 때 이렇게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감히 따라 해 봤다. 오글거려도 어쩔 수 없다. 정말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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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선보인 이후 일어난 일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주로 적게 됐다. 그만큼 이 경험들이 나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예상치 못한 관심에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도 들고, 걱정과 부담이 부풀려지지만 결국에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영화 공부에 다시 진득하게 집중해야겠다는?생각이다.?

끝으로?스태프, 배우분들을 포함해 도움 주신 모든 분께, 영화를 찾아주시는 관객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모두 평안한 새해를 맞기를!
임지선(영화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재학 중이다. <성적표의 김민영>을 공동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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