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juIFF #6호 [인터뷰] <안녕하세요> 김환희, 이순재, 이윤지 배우
사랑하는 법, 사랑받는 법, 살아가는 법
죽음을 앞둔 이의 얼굴에선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슬픔과 우울처럼 짙게 침잠하는 감정만이 떠오른다면, <안녕하세요>를 보며 그 위에 밝은 레이어를 하나 덧입혀보자. 차봉주 감독의 신작 <안녕하세요>는 죽음에 잠식되는 대신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사랑하는 이와의 미래를 그리는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의 일상을 그린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던 수미(김환희)는 호스피스 병동의 수간호사 서진(유선)의 권유로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환자들의 밝은 에너지를 이어받는다. <안녕하세요>가 전주의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기 전, 김환희, 이순재, 이윤지 배우를 만났다. 영화의 첫 상영을 앞두고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죽음을 앞둔 인물들의 삶의 태도에 관해 진중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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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뵙는 건 모두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의 어떤 점 때문에 출연을 결심하게 됐나.
이윤지 시나리오를 읽을 때 마치 합창이나 오케스트라처럼 대인원이 함께 연주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조화로운 팀플레이의 한 부분이 되고 싶었다. 이 시나리오를 만났을 때 개인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던 시기였다. 영화 덕분에 진짜를 볼 수 있는 힘을 얻었고, 나는 이 영화의 작은 퍼즐 한 조각에 불과하지만 내게 이 영화는 정말 큰 조각으로 남았다.
김환희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좋아한다. 연구할 게 많고 고민이 필요한 캐릭터일수록 더 좋기 때문에 <안녕하세요>의 수미를 꼭 연기해 보고 싶었다. 또 같이 출연하는 선배들 모두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들이었다. 연기 호흡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발전될 게 너무 많아 보여서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배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매번 마음 편하게 현장에 올 수 있었다.
이순재 박 노인은 대단한 기복은 없지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역할이다. 그래서 ‘아,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할아버지 캐릭터랑 비슷한 것 같아도 저 할아버지와 이 할아버지는 또 다르니까. (웃음)
세 분의 인연은 언제 처음 시작됐나. 이순재 배우와 이윤지 배우는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만난 적이 있다.
이윤지 그 작품에서 처음 뵀고 <안녕하세요>가 두 번째다. 많은 작품을 함께 하진 않아도 오며 가며 인사드리고, 출연하신 작품들을 봐왔기 때문에 계속 마음속에 계셨다고 할 수 있다. 환희 배우는 같은 회사 식구다. 작품으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너무 좋다. 훌쩍 커버려서 신기하기도 하고. (웃음)
김환희 전체 리딩 때 이순재 선생님을 처음 뵀는데 긴장돼서 손에 땀이 정말 많이 났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촬영 신이 많았는데 어느 날 촬영이 끝나고 선생님이 감독님께 ‘얘 연기 잘한다’고 말씀하신 거다. 엄청 감동받은 채로 “선생님께 칭찬받았다!"라고 좋아하면서 집에 돌아갔다. (웃음)
이순재 잘한다는 건 뭐 지금 완벽하다는 얘기는 아니고, 앞으로 잘할 수 있는 조건이 얼마든지 되어 있다는 뜻이지. 수미가 단순한 역할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 죽는 법을 배우겠다고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아픔이 많은 아이인가. 그러다 삶의 의지를 깨닫고 자기 길을 선택해나갈 수 있는 위치가 된다. 그런 성장을 잘 표현했다. 아주 착실한 배우다.
세 분이 말씀 나누시는 것만 봐도 현장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겠다 싶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항상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갈수록 가족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띄었다.
이윤지 정말 화기애애했다. 매번 감독님이 잘 끌어주셨다. 이순재 선생님이 “여기서 이렇게 해보자”라고 연기 팁도 주시고, 후배들이 긴장하고 있을 때 “괜찮다, 잘 하고 있다”고 북돋아 주시기도 했다.
이순재 편안해야 작업할 때 자기 역량 발휘를 할 수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지.
호스피스 병동에 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었나.
김환희 영화 찍기 전에는 잘 몰랐다. 외국에서 환자분들이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그런 병동을 꾸며뒀다는 말만 얼핏 들은 정도였다. 그래서 감독님과 따로 이야기도 나누고 호스피스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찾아봤다.
이순재 나도 호스피스 병동에 관해선 처음 들어봤는데 괜찮은 시스템이더라.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거니까. 우리 영화에서도 병원 분위기가 굉장히 좋고, 윤빛(송재림)이라고 재주꾼이 하나 나와서 여러 가지 이벤트를 해준다. 아주 건전하고 긍정적인 시스템이다.
수미가 처음 호스피스 병동에 왔을 때 박 노인이 아는 척을 하질 않는다. 마지막까지 결국 밝히지 않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
이순재 내색을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너를 내가 도와줬다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또 다른 국면이 시작될 테니까. 지금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관계 정도로 잘 마무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굳이 과거를 회상시키는 대신 수미가 지금 상황에서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갖고, 생기 있게 잘 살아나가길 바랐던 거지.
박 노인의 바람대로 수미는 점점 활력을 찾아간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건, 한때 죽고 싶다는 의지밖에 없던 수미가 서진(유선)이 자신의 지옥에서 나올 수 있길 돕는다는 거다. 수미의 변화가 극명히 드러나는 신이었다.
김환희 호스피스 사람들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수미가 맨 처음에 호스피스 병동에 간 건 서진 때문이긴 하지만, 수미 자신도 궁금했을 것 같다.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너무 행복해 보이니까 다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인지. 수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하던 아이였는데 박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의 중요성, 그리고 자신 역시 밝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사랑받는 법, 사랑하는 법, 살아가는 법. 호스피스 사람들에게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진아가 남편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는 장면도 좋았다. 시종 밝던 진아가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는데.
이윤지 원래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였는데 진아만 유일하게 남편에게 편지를 쓴다. 남아있는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낸 유일한 인물이다. 먼 미래를 먼저 다녀왔다는 느낌이 들었고, 나로서는 값진 경험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안녕하세요>가 처음으로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도 예정되어 있는데 간단히 소감을 이야기해 준다면.
이윤지 환희 배우가 대표로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우리의 똑순이다. (웃음)
김환희 영화 <안녕하세요>도 관객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고, 나도 전주국제영화제와 관객과의 대화가 모두 처음이다. 처음인 것들이 많아서 긴장이 많이 된다. 어떤 재미보다는, 호스피스 병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객들이 많은 위로를 받고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글·조현나, 사진·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