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션 +1> 후지와라 에미코 프로듀서, 배우 타모토 소란,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희망을
지난해 7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기 피습으로 사망했다. 범인은 야마가미 데쓰야. 어머니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약칭 통일교)에 전 재산을 헌납하는 등 어려운 성장 과정을 거친 인물이었다. <레볼루션 +1>은 야마가미 데쓰야의 삶을 가와카미라는 가상의 인물로 재현한다. 더하여 작품을 아베 전 총리의 국장 기간에 개봉하는 담대함까지 선보였다. 60~70년대에 급진적 정치 영화를 만들었고, 이후 20년 동안 실제 중동지역의 혁명 게릴라군으로 활동했던 아다치 마사오 감독의 이력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당국에 의해 출국 금지 조치 중인 아다치 마사오 감독을 대신하여 영화의 바깥 살림을 도맡고 있는 후지와라 에미코 프로듀서, 주연 가와카미를 연기한 배우 타모토 소란이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실제 살인범의 삶을 소재로 했다는 면에서 감독의 전작 <약칭: 연쇄 살인마>가 떠오른다.
후지와라 에미코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야마가미 데쓰야의 체포 당시 얼굴을 보고선 <약칭: 연쇄 살인마>의 실존 인물이었던 나가야마 노리오의 얼굴을 단번에 떠올렸다고 한다. 분명 살인자로 체포되는 상황인데도 무언가 후련해 보이고, 체념한 듯한 그 표정이 무척 닮았다고 느끼셨다. 그래서 세대를 뛰어넘어 반복되는 이 사건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하셨다.
다만 두 영화의 방법론은 정반대다. <약칭: 연쇄 살인마>는 인물의 모습을 지운 풍경 영화였다. 반면 <레볼루션 +1>은 야마가미 데쓰야를 재현한 가와카미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난다.
후지와라 에미코 <약칭: 연쇄 살인마>는 인물의 모습을 지운 덕에 굉장히 정치적인 영화가 됐다. 반면 <레볼루션 +1>은 인물의 정체성과 행위를 최대한 정치적이지 않게 다루려 했다. 실제 야마가미 데쓰야가 체포될 당시에도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원망한다거나 통일교를 직접 비난하진 않았다. 그래서 감독은 야마가미의 범행이 정치적인 의도의 테러가 아니고 한 사람의 결기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와카미를 테러리스트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다루길 원했고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됐다.
일본 현지에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 기간에 맞춰 개봉했다. 당시 여러 논쟁이 오가기도 했다는데.
후지와라 에미코 기획 단계부터 개봉 일자를 맞추기로 계획했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국장을 치러 줄 만큼 훌륭한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미디어에서는 그를 멋지게 포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후대 사람들에게 이런 역사만 남겨줄 수 없으니 영화를 통해서라도 반대 의견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상영본은 이번 영화제 상영본과 달리 길이도 짧았고 국장 반대에 대한 직접적 이야기가 더 많았다. 개봉 전에는 사자 명예훼손이라는 반대 의견이 SNS에 많았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 의견을 바꾸겠다는 사람도 많았으니 나름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웃음) 다만 정식 개봉이 아니었던 터라 이벤트성으로 3일 동안 14개 관에서만 상영했다. 대신 올해 12월 24일에 지방 극장을 중심으로 재개봉하게 됐다. 국내외에서 먼저 상영 제안이 오는 경우도 많다.
왕성히 활동 중인 배우로서 이런 논쟁적인 작품에 출연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타모토 소란 연기자로서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많이 고민했다. 다만 확실한 건 야마가미 데쓰야의 삶을 알아갈수록 굉장히 분한 감정에 휩싸였고 많은 생각이 들었으며 이걸 남들에게도 표현하고 싶었단 사실이다. 다만 내가 이런 사회 문제에 대해 무력투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대신 연기자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로서 이 감정을 표출하고 싶다는 일념에 다다르게 됐다. 사실 기획 단계 당시에는 소속사에 속해 있던 터라 출연이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마침 소속사를 나오게 됐고 내 의지로 출연을 결심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며 감정적인 고난이 있진 않았나.
타모토 소란 이전에도 실존 인물을 연기한 적은 꽤 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워낙 준비 기간이 짧았다 보니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거나 인물을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인물에게 완전히 동화되는 메소드 연기보단 내가 이 사건을 접하고 대본을 봤을 때의 느낌을 순수하게 표출하는 데 집중했다. 감독님에게선 야마가미 데쓰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받아들이고 표현했으면 좋겠단 말씀 정도만 들었고 구체적인 연기 디렉팅을 받진 않았다. 현장에서 감독님의 에너지가 워낙 출중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협업하는 과정이 수월했다.
감독이 아직 에너지가 넘친다니 좋은 소식이다.
후지와라 에미코 젊은이들과 촬영해서 그런가. 20년 전부터 백발이었는데 점점 검은 머리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웃음)
타모토 소란 그래서 스태프, 배우들 사이에선 몰래 염색하고 오시는 거 아니냔 말도 많았다. (웃음)
인상 깊던 두 개의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 하나는 암살 준비 중이던 가와카미가 방 안에서 혼자 춤추듯이 몸부림치는 장면이다. 가와카미의 분노와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타모토 소란 정말 아무런 계획이 없던 장면이다. (웃음) 질문처럼 대본에는 ‘춤추는 것 같은 움직임’ 정도로만 적혀있었다. 춤을 춰본 적도 없고 개인적으론 그런 고립과 고독에 처해본 적도 없다. 그래서 가와카미의 내면에 쌓인 분함의 에너지를 방출하자는 생각만 하면서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또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고, 그걸 때려잡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어려운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테이크만에 오케이가 났다.
또 하나는 암살 직전에 골목에서 혼자 음악을 듣는 장면이다. 무척 떨릴만한 상황인데 오히려 침착한 일상의 단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타모토 소란 사실 애초 시나리오에서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른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른다는 건 무언가 내면의 것을 방출하는 행위지 않나. 마찬가지로 암살 결행 역시 내면의 모든 감정을 발산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이후 암살 장면의 강렬함이 현격히 떨어질 것 같단 위화감이 있었다. 감독님께 이런 이야기를 드린 끝에 노래를 부르기보단 듣는 것으로 상황을 바꿨다. 충분한 각오를 마치고 최대한 침착하려 하지만 생물학적인 몸의 간섭과 떨림을 조금씩 이기지 못하는, 그런 묘한 연기를 목표로 삼았다.
제목에서 ‘+1’의 의미는 무엇인가?
후지와라 에미코 원래 제목은 <밝은 미래가 우리의 손에>였다. (웃음) 대본을 수정할 때마다 제목이 달라졌고 감독님의 마지막 선택은 ‘밝은 미래’, 또 마지막의 마지막에서는 ‘별이 되다’를 적극적으로 미셨다. 지금의 젊은 관객들에게 구원에 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건네주고 싶으셨던 거다. 하지만 제작진들이 계속 다른 의견을 냈다. (웃음) 그러다가 ‘레볼루션’이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감독님은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혁명을 말하는 이야기는 아니기에 썩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그런데 거기에 +1이 붙으니 혁명이란 단어 자체보단 혁명 속의 개인, 그 개인의 삶이라는 뉘앙스가 더해졌다. +1이든 +2든 +8이든 중요한 건 어떠한 사건을 마주한 이들의 각자 다른 선택이라는 의미다. 한국 관객들도 이 작품을 보고 많은 생각을 나눠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