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문성경·전진수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영화제를 꿈꾼다”
5월1일 개막을 앞두고 만난 문석·문성경·전진수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티켓 구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듣고 있다”며 영화제를 찾을 많은 관객을 위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부대 행사를 기획하고 주요 행사를 치르는 공간을 다양하게 가져가 기존 영화제 관객들뿐 아니라 전주를 방문하는 관광객, 전주시민들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올해 한국경쟁과 국제경쟁 지원작의 경향은 어땠나.
문석 출품량이 전체적으로 늘었다는 자랑을 먼저 하고 싶다. (웃음) 우선 한국경쟁은 134편, 한국단편경쟁은 1332편으로 역대 최고 수치다. 올해 한국경쟁은 전과는 다른 결의 여성영화가 많아졌다는 게 특징적이다. 미투 직후에 나온 여성영화는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보여주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주를 이뤘는데 이번엔 소재의 스펙트럼 자체가 넓고 일상 속의 여성을 섬세하게 바라보며 그 안에서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려는 작품들이 많았다.
문성경 국제경쟁 역시 출품작이 늘었다. 81개국에서 747편을 출품해 작년과 비교하면 거의 24%가 증가했다. 국제경쟁에서 눈에 띄는 경향이라면 창작자들 모두가 눈물겨운 노력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영화를 만들다 보니 제작 기간도 길어지고 로케이션과 출연진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했더라. 극한 환경 속에서도 자기의 영상언어를 구사해서 작품을 완성한 감독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차이밍량 감독의 ‘행자 연작’ 10편을 전부 감상할 수 있는 귀한 자리가 예정돼 있다. 최종 결정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은데.
문성경 작년 로카르노 영화제 때 열린 차이밍량 스페셜 토크 행사 때 감독님께 처음 인사드렸다. 요즘 영화들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평을 하시길래 심사위원으로 섭외하려는 마음을 그 자리에서 접었었다. 그런데 같은 영화제에서 열린 차이밍량 전시 자리에서 만난 감독님께서 “이번에 10번째 행자 영화를 만들었는데 내년에 프리미어를 계획하고 있고 괜찮으면 연작 전편을 다 모아 전주에서 틀고 싶다”라는 제안을 먼저 주셨다. ‘연작 극장 상영’이라는 분명한 뜻이 있었던 덕분인지 이후로는 프로젝트가 순탄하게 진행됐다. 얼마 전에 또 감독님께서 갑자기 연락을 주셔서 아이디어를 하나 내신 게 있다. 바로 행자 퍼포먼스 콘테스트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마지막까지 느리게 걷는 사람이 우승이다. 차이밍량 감독과 ‘행자 연작’의 주연인 이강생 배우가 직접 심사하고 감독님께서 직접 볶으신 커피가 선물이다. 행운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궁금하다. (웃음) 사전 참여 신청은 이미 끝났고 행사는 5월4일 저녁 7시 CGV전주고사점 앞에서 열리니 편하게 구경하셨으면 좋겠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영상자료원과의 특별전 ‘다시 보다: 25+50’도 열린다. 영상자료원과 어떤 논의 끝에 마련된 자리인지 궁금하다.
문석 영상자료원에서 매년 영화제에 복원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 묻는데 이번이 25주년으로 딱 떨어지니 영화제 초창기에 틀었던 작품들을 복원하는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1회 개막작 <오! 수정>(2000), 1회 상영작 <플란다스의 개>(2000), 7회 상영작 <사랑니>(2005)를 4K 디지털화 버전으로 이번에 최초 상영한다. 1회 상영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2016년 만들어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상영된다. 50주년을 맞아 함께 기념할 만한 해를 영상자료원은 <미망인>(1955), <피아골>(1955) 등 총 4편을 영화제에서 상영하기로 했다. 작년 12월과 올해 1월에 돌아가신 김수용 감독님의 <안개>(1967)와 이두용 감독님의 <피막>(1980)도 틀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잘됐으면 하는 기획이다. 오셔서 이런 옛 영화들을 영화제에서 우연히 보았을 때 받는 신선한 충격을 많이들 느끼셨으면 좋겠다.
-올해의 J 프로그래머는 허진호 감독이다. 올해는 왜 허진호 감독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는지.
전진수 이견이 없는 한국 대표 감독이 아닐까. 아직 국내 개봉하지 않은 신작 <보통의 가족>이 지금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받고 있고 전주가 고향이신 분이라 모시면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출작인 <봄날은 간다>와 <외출>, 감독님이 영감을 받은 영화 <바보들의 행진> <파리, 텍사스> <동경이야기>를 상영하고 관객들과 직접 만나는 스페셜 클래스도 있다.
-작년부터 시작한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 사업 및 특별 상영도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알고 있다.
문석 위원장이나 프로그래머가 아닌 현장 스태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선 의미 있는 사업이다. 작년엔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단편 영화 3편을 하루 동안 상영하는 정도였는데 올해 ‘특별상영: 배리어프리 버전’에는 단편 7편(전주국제영화제 제작지원작 4편+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제작지원작 3편), 장편 3편을 이틀 동안 튼다. 한국농아인협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수어 통역 영화도 국내 영화제 최초로 상영한다. 스크린 오른편에 수어 통역사 2~3분이 나와서 극 중 대화를 수어로 통역해 주는 형식이다. 장애인의 영화를 볼 권리에 대해 계속 관심을 두고 앞으로도 사업적으로 규모를 키우려 한다.
-영화제 대표 전시인 ‘100 Films 100 Posters’가 올해로 10회다. 역대 전시 포스터를 전주시 관광 명소들에서 만날 수 있다고,
문성경 10주년을 기념해 아카이브 전시를 연다. 장소는 전주 남부시장 근처에 새로 생긴 ‘문화공판장 작당’이다. 영화제가 끝나도 6월16일까지 전시는 계속되니 여유 있게 들러 보시면 좋겠다. 완판본문화관 야외마당에는 공간 특색에 맞춰 한글의 조형미를 갖춘 포스트들만 따로 모아 놓았고, 전주시립인후도서관에서는 초록을 테마로 한 그린 포스터 컬렉션이 열린다. 영화의 거리뿐만 아니라 전주 어디를 가든 포스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으니 오며 가며 눈여겨 봐주셨으면 좋겠다.
프로그래머 3인의 추천작
문석 <새벽의 모든> <럭키, 아파트> <어느 봄의 여정> <목소리들> <피아골>
문성경 <맷과 마라> <예쁜 영화는 아니야>
전진수 <할머니 DJ, 비카!> <...넷, 다섯, 여섯...> <브라질의 골때녀들> <코파 1971>
[글 이유채 / 사진 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