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솜 피는 날> 전주톡톡 “슬픔과 애도를 점유하지 않도록”
시민과 관객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전주톡톡은 영화인들의 현장 경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 작품과 현시 사이를 잇는 메시지 등을 가볍고 유쾌하게 들어볼 수 있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5월 3일 금요일,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문화광장 부근의 소담한 카페에서 <목화솜 피는 날>의 감독과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작품을 지휘한 신경수 감독을 필두로 박원상, 우미화, 조희봉, 최덕문 배우가 관객들을 만났고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는 듯 적극적으로 질문을 꺼내는 공승연 배우가 진행을 맡았다.
'코리안시네마: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에 소개된 <목화솜 피는 날>은 10년 전 참혹한 사고로 둘째 딸을 잃은 부부 병호(박원상)와 수현(우미화)의 이야기를 다룬다.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외쳐온 병호는 다른 유가족들과 갈등에 충격을 받아 기억을 잃고 만다. 서서히 희미해지는 과거에도 그에게는 마음 한 편에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카페 앞에 줄 지어 토크 프로그램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금세 공간을 가득 메웠다. 따뜻한 관심 어린 눈빛은 종종 웃음 소리로 변해 희망을 보냈다.
이날의 사회를 맡은 것은 신경수 감독이 PD 시절 제작한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로 인연이 닿은 공승연 배우. 미리 작품을 보고 온 그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참관객을 위한 기본 사항부터 영화를 깊이 파고드는 것까지 다양한 관점의 질문을 건넸다. 영화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묻자 조희봉 배우가 과거를 회상하며 답하고 있다. “대본 리딩할 때부터 사람들이 먹먹하고 슬퍼했다. 그제야 알았다. 지난 10년 동안 나 또한 내 안에 내재된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걸. 그런 슬픔을 모두가 끄집어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서 더 선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 신경수 감독이 가장 신경 쓴 것은 세월호 선체를 촬영하는 일이었다. 실제 선체 안에 들어가자마자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감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스탭들이 많아서 그것을 보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독여야 했다. 촬영 회차가 8회차로 상당히 짧았기 때문에 현장을 대하는 집중과 몰입이 중요했지만, 세월호를 향한 스탭·배우들의 감정을 추스르는 일은 놓치지 않았다.
<목화솜 피는 날>의 수현을 연기한 우미화 배우는 “영화 속에 물리적인 10년이 다 담긴 건 아니지만 긴 시간 동안 유가족들에게 쌓여 온 슬픔과 그들이 겪은 일들은 잘 보여주려 했다.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공감한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목화솜 피는 날>은 그간 사회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창작집단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첫 극영화이면서도 4.16참사가족협의회가 공동 제작 주체로 참여했다. 장면 중간중간 실제 유가족이 배우로 등장하는데, 조희봉·최덕문 배우가 이 때의 기억을 되짚었다.
“돈을 받고 연기를 하는 직업 배우와 다른 무게였다.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자기 안의 경험을 끄집어내는 모습들이 보였다.”(조희봉 배우)
“우리는 준비를 하고 감정을 조절해서 연기하는데 이들은 그 자체로 툭툭 내뱉는다. 거기서 진실된 감정이 느껴졌다. 영화에는 진상 규명을 외치던 유가족들이 내부 갈등으로 싸우는 장면이 있다. 다툼을 말리기 위해 내가 “그만해! 그만하라고!”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른다. 근데 그때 실제 유가족분이 뒤에서 “그만해~” 하고 묵직하게 딱 한 마디 던지는데 그게 그렇게 울림이 있었다. 진짜 그만해야 할 것만 같고, 그만하게 되는. 이 갈등을 해소시키고 싶은 제동 장치로서 기능하는 느낌이었다. 영화의 한 끝을 올린 부분이라 생각한다.”
참여자들이 깊이 공감하는 풍경이 가득한 전주톡톡 프로그램은 40여분의 밀도 높은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영화의 흐름과 메시지를 명쾌하게 짚어낸 모더레이터 공승연 배우는 <목화솜 피는 날> 극장 개봉을 위해 텀블벅 펀딩이 진행 중이라는 설명도 함께 덧붙였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신경수 감독이 마지막 말을 전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가 피해자나 약자에게 너무 가혹한 국가가 돼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먼저 슬퍼하지 말자. 슬픔과 애도를 우리가 점유하지 말자. 영화를 보면 마음 아프지만 밝고 긍정적인,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몸부림이 담겨 있다. 세월호 하면 떠오르는 공통된 이미지가 있지만 그것보다 더 다양한 풍경을 말할 수 있는 기점이 되면 좋겠다.”
[글 이자연 / 사진 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