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매거진』 성장의 기록 〈거리의 소년 사니〉 레베스 발린트, 미쿨란 다비드 감독
2024-05-04 17:51:00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기록할 수 있을까? 레베스 발린트 감독과 미쿨란 다비드 감독은 어린아이였던 사니가 성장하는 모습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필름에 담았다. 영화는 부다페스트의 어느 골목에서 때로는 위험천만하기도 하고, 때로는 걱정스럽기도 한 삶의 모습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어린 주인공이 사춘기에 접어든 어느 날, 인생을 영원히 바꿀 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공동 감독 레베스 발린트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사니, 그리고 사니 가족들과의 첫 만남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나?

지난 2011년 부다페스트의 한 광장에서 특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 셋이 다뉴브강 다리 난간을 기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아이들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스케이드보드를 빌렸고,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사니는 여덟 살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어른의 세계가 지닌 복잡성과 모순에 대해 놀랍도록 성숙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사니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정기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둘 다 미술학도였다 보니 아이들과 예술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그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허락해 주었고, 동시에 우리의 세계를 엿볼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늘 나이나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우리와 아이들 사이에 열등감과 우월감이 조성되지 않도록 상당히 신경 썼다.

오랜 시간에 걸쳐 특정 사람들의 삶을 좇는다는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촬영을 하면서 구체화된 것인지 궁금하다.

그 무렵 다비드(공동 감독)는 기본적으로 모든 걸 촬영하고 있었다. 언제나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점점 더 실험적인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찍었고, 길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사회적 측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촬영은 거의 중단했다.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관두고 자신들만의 작은 세계에 머무르게 되면서 우리는 그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집이 겨우 세 블록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아이들을 찾아갈 수 있었고 우정도 이어졌다. 그 시기에 다비드는 새로운 촬영 기법을 배우고 좀 더 많은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사니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건, 그가 카메라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단 아이들은 미디어에 밝지 않았고, 우리도 모든 걸 지나치게 통제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장소와 상황을 찾아다녔다.

영화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 주인공은 여덟 살 소년이고, 두 번째 파트에서 우리는 열다섯 청소년이 된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사니와 그의 가족들을 계속 찍었지만 그 촬영분을 영화에 넣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흐른 뒤에 그들을 다시 만난 것인가?

첫 파트에서 사니가 열두세 살이 되기 때문에 영화에 시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기간, 공백은 2년에 불과하다. 어쨌든 다비드가 첫 파트에서 찍은 게 너무 많아 내용이 반복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편집 단계에서 사춘기 직전 시기는 건너뛰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영화 속 사니를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지 나중에 알게 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엄격하게 연대순으로 나열하기보다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했다.

촬영한 분량이 방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촬영을 하면서 편집을 했나? 그게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 편집을 했을까? 오랜 기간에 걸쳐 촬영이 이루어진 작품인 데 비해 러닝 타임이 짧고, 더군다나 체감 시간은 더욱 짧은 듯하다.

편집할 촬영본이 200시간 넘게 있었다. 다비드가 사니를 찍기 시작하기 전 쌓아 둔 길거리 영상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됐던 시기에 편집에 들어갔는데, 어쨌거나 실내에 있어야 했을 텐데 〈거리의 소년 사니〉 덕분에 목적을 가지고 실내에 있을 수 있었으니 행복한 우연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편집 작업은 약 5개월 동안 이어졌는데, 이때는 정말 자유롭게 편집했던 것 같다. 각 날짜에 촬영한 영상을 살피고 시간 순서나 주제, 인물에 따라 장면을 구성했다. 그렇게 3시간 30분 분량의 편집본을 만든 후 편집자 중 한 명인 커로이 설러이와 함께 100분으로 줄이고, 저작권이나 해당 법정 사건과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한 검토를 마쳤다. 이번에는 이 어셈블리 컷을 〈거리의 소년 사니〉의 또 다른 편집자인 야엘 비튼에게 가져가 다시 한번 모든 자료를 살피고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100분 길이의 버전으로 만들었다. 이걸로 주요 투자사인 채널 아르떼(ARTE)의 승인을 얻었고, 이 버전은 아르떼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후 최종 수정 작업을 거쳐 전주에 출품하게 됐으며, 추후 HBO 맥스에서 방영되는 것도 이 버전이 될 것이다. 모두 합쳐 80주가량 편집을 한 셈인데, 정말이지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그렇게 오래 따라가며, 그들 삶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있었나? 그들에게 어떤 책임감을 느꼈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단순히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사니 가족과 제법 포괄적인 관계를 맺었다. 처음에 다비드만 촬영을 진행하던 시기에 다비드는 사니 가족보다는 아이들이 뭘 하고 놀고 어떤 것들을 재미있어 하는지에 초점을 맞췄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의 상호적인 놀이가 우리 관계의 기반이 됐다. 이후 주인공 사니의 학업 상황과 가족 사정의 변화로 우리의 관계는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로 재정립됐다. 청소년기에 대한 흥미 부족과 이전의 모든 관계에 대한 거부도 그 이유였다. 사니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사는 집의 보수, 사니의 학업 상황 모니터링, 함께 공부하는 것 등으로 이 시기의 관계가 이루어졌다. 끝으로 사니가 우발적이고 경솔하게 건물에 불을 지르고 그 결과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뒤, 우리 관계는 또다시 급격히 변했다. 새로운 상황을 감안하고 우리의 정신 건강도 지키고자 이때부터는 적극적으로 돕기보다 친구이자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관찰자로서 자리를 지켰다. 다행히도 우리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과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사니 가족에게 필요한 것이었던 것 같다. 이 마지막 기간은 사건을 막기 위해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나 하는 회의에 휩싸여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사니에게도 그의 삶을 찍은 영상을 보여줬나? 사니는 자신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어느 정도까지 알았나?

우리는 사니에게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촬영은 사니에게 자연스러운 일로 자리잡았던 것 같다. 다비드는 자신이 앞으로 사니를 13년을 더 찍게 될 줄은 몰랐지만, 촬영을 시작한 초기에도 뭔가 느끼는 것이 있었는지 아이들에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사니는 이에 한결같이 관심이 없었다. 촬영본을 사니가 봐주기까지만도 몇 년이 걸렸고, 그가 시사회 전에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화관에 데려가는 데도 요령껏 꾀어서 가야 했다. 그리고 사니는 큰 충격을 받았다. 부끄러운 순간들까지 모두 담긴 자신의 성장 기록을 90분 동안 시청한다고 상상해 보라. 결국 사니는 영화를 상영하는 데는 동의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자세한 내막이 나오진 않지만 영화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사고가 벌어진다. 이 사고는 영화의 끝을 알린다. 이 일이 있었을 때 영화를 완성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는지 궁금하다.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무엇이었나?

이루 말할 수 없이 충격적이었다. 사고 일주일 뒤 사니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고, 사니에게 변호사가 필요하니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다비드는 기숙사 화재 사건에 사니가 연관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던 것 같다. 우리는 정말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절망감, 책임감, 배신감, 무력감 등. 그리고 수개월의 고심 끝에 이 영화를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그 시점에 영화를 접는 것이 사실상 사니에게 가장 나쁜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는 사니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과 그 사고가 누구나 십대 시절에 할 수 있는 바보짓일 뿐이었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물론 우리가 사니를 촬영하지 않은 평행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알 수 없다. 우리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관찰자와 관찰 대상자 사이가 아니라 우정에 기반한 것이기에, 지난 13년 동안 다비드와 나는 늘 대안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는 사니 같은 아이들이 견고하고 안전한 가정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지 않을까 이야기 나누곤 한다.

누군가의 삶을 다루는 대부분의 다큐멘터리와 달리 〈거리의 소년 사니〉의 마지막 부분에는 사니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이 없다. 사니와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나? 사니의 삶은 어떻게 계속되고 있나?

당연히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 사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밝히거나, 이러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식의 분명한 결말을 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양가감정을 자극해 관객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저마다 사회적 책무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를 얻길 바랐다. 사니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다. 알코올 의존자가 없는 가정으로 이사했고,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했으며,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우리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패턴을 깨뜨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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