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매거진』 진실되고 진솔하게 〈통잠〉 김솔해, 이도진 감독
2024-05-04 18:06:00

국가 소멸을 이야기할 만큼 저조한 우리나라 출생률은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난임 부부를 영화의 주인공 자리에 둔 이유가 있다면?

저출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크지만 그에 반해 난임 부부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다. 저출생 예산 규모는 점점 커져왔지만 난임 부부에 대한 지원은 매우 한정적이다. 간절하게 아이를 낳고자 하는 부부가 꽤 많이 있음에도 전폭적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부부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고 싶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데, 결코 포기가 안 되는 일에 갇힌 부부의 이야기. 지금 시대에도 이런 부부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초반부 지연(김시은)과 도진(이도진)이 태아심음측정기로 아이의 심박을 듣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소리로 생명의 신호를 찾는 이 장면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난임 병원을 다니고 시술을 받는 과정에서 부부가 겪는 가장 큰 고통이 유산이다. 보지도 못한 아이와 이별의 고통을 계속 겪는다. 임신 10주가 되면 안정기라고 해서 난임 병원을 ‘졸업’한다고 한다. 졸업까지의 기간 동안 얼마나 불안에 떠는 이들이 많은지 집에서 아이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정용 태아심음측정기가 있다고 하더라. 이런 마음을 담고 싶어 해당 소품을 사용했다. 이 장면은 병원으로부터도, 약사로부터도, 심지어 같은 임산부로부터도 외면 받은 지연이 그럼에도 뱃속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는 장면이다. 연출 설계는 이러했지만 막상 장면 설명은 ‘심음측정기를 해보지만 잡음만 들린다’는 한 문장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배우들이 훌륭하게 완성해 주었다.

영화는 아이를 갖기 위한 부부의 노력을 과학적(시험관 시술 등)으로, 또 비과학적으로 담아낸다. 특히 남편은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기도를 통해, 아내는 무속의 힘을 빌려서라도 아이를 갖기를 원한다. ‘구복'의 측면에서 이러한 종교적인 행위를 강조해서 표현한 까닭은 무엇인가.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담아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복 행위가 나오게 됐다. 인간이 정말 힘들어진 순간에 무엇을 붙잡게 되는가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평소에는 구복의 행위가 소용없다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이 저렇게 된다면 할 수 있는 게 구복밖에 없더라.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시도해 봤으니까. 난임 부부야 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난임 시술 과정을 겪으며 부부는 큰 결정부터 사소한 것들까지 모든 것으로 다투게 되기 쉽다. 종교 또한 그렇게 되기 쉬운 부분이다. 어떤 종교는 시험관 시술을 금지하기도 한다. 이런 차이들로 부부는 더욱 서로 소통이 단절되고 고독해진다. 이런 부분 또한 담아내고 싶었다.

지연 역을 맡은 김시은 배우의 열연이 눈에 띈다. 그는 〈빛과 철〉(2020) 등에서 호연을 펼치기도 했는데,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김시은 배우는 과거에 연극을 하며 알고 지냈던 사이였고, 최근 동료의 영화에 출연한 것을 보고 연락했다. 시나리오를 메일로 먼저 보내고 참여 의사를 듣기 전까지는 과거의 인연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온전히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랐다. 다행히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 해 같이 작업을 하게 됐다. 여러모로 시기가 맞았던 것 같다. 시나리오 특성상 나이나 관심 등등이 맞지 않으면 소화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김시은 배우가 난임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지연의 아이를 향한 집념이 강해질수록 도진의 의지는 점차 꺾여간다. 사실 집착에 가까운 지연의 집념은 관객 입장에서도 오롯이 감정 이입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정도가 세다. 지연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듯한데. 각각의 캐릭터 설정을 어떻게 했는지, 연기 디렉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캐릭터를 어떻게 구축했다기보다는 그 상황에 있는 인간들을 진실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지연 역할의 경우 간절히 원하는 것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지만 결국 내 손을 떠나가는 상황, 이것이 반복된다. 그러면서 집념이 집착이 될 정도로 강해져 간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 속에 남들이 보기에는 집착으로 보일 정도로 포기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시은 배우와는 이런 것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많은 공감을 했다. 도진 캐릭터 또한 그 상황의 인물을 보여주고자 했다. 난임 시술에서 남편이 참여하는 과정은 극도로 적다. 남편은 온몸으로 힘든 과정을 겪어내는 아내에게 어떠한 것도 해줄 수가 없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방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좌절하게 된다. 연기 디렉팅은 최대한 실제 삶의 조각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했다.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상황 속에 있는 인물들을 진실되게 담아내고 싶었다. 결과물을 머릿속에 그리며 거기에 맞게 연기 디렉팅을 하기보다는 배우들이 그 인물에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영화 작업을 위해 임신과 출산, 난임과 불임 치료 등에 대한 사전 조사가 상당했을 듯하다. 시나리오 집필 전 사전 조사 단계에서 어떤 작업들이 병행되었나.

영화를 도와준 분이 있다. 『난임 전문의 26인이 말하는 임신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이승주 기자다. 서적이나 인터넷 자료들로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분이 소개한 의사들에게도 자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크게 도움을 받은 것이 난임 카페의 글들이었다. 키워드 하나를 검색하면 관련된 내용이 수십 페이지가 넘게 나온다. 여기에서 난임을 겪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문제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외 난임 브이로그나 블로그에서도 다양한 정보들을 얻었다. 조사는 시나리오 집필을 마칠 때까지 계속했다.

영화 초반부에 부부가 맞이한 비극 못지않게 영화 종반부에 이들이 맞는 상황도 놀랍다. 엔딩 장면을 촬영할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들 부부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가 얻고자 한 서사적 전략은 무엇이었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 정도가 처음에는 우리조차 이해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해의 저변을 넓혀가게 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1부터 10까지 이해하니까 관객에게 1부터 10까지만 제시하는 것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1,000까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관객과 100까지는 같이 가보자고 하고 싶었다. 굉장히 소수지만 어쨌든 세상에 있는 일이고, 존재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엔딩은 사실 두 가지 큰 버전이 있었다. 그 두 가지를 어느 정도 합친 것이 지금의 엔딩이다. 소규모 제작 환경인 우리로서는 엔딩 장면 촬영이 쉽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 내에 찍는 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모든 인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 다행히도 무사히 촬영할 수 있었다.

〈통잠〉은 공동 연출작이다. 함께 연출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면 무엇일까?

영화 작업에서 연출이 해야 하는 일은 굉장히 많다. 모든 부분을 잘 알고 또 잘 해내기란 사실 쉽지 않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알게 되고, 그 부분들을 채워주며 진행했다. 촬영하며 힘든 일이 꽤 많았는데 둘이기에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배우는 부분도 많았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떤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고 거기서 새롭고 좋은 것들이 생겨나는 경험을 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합치된다면 공동 연출로서 얻는 이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또 다른 문제 상황은 뭐라고 생각하나. 창작자로서 관심 있는 주제가 있다면?

사회는 개인이 적응하기 쉽지 않은 속도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사회 구조가 급변하면서 경제적인 부문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문화적인 부문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 상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세대적으로, 이념적으로, 성별적으로 수많은 집단 간 갈등이 존재한다. 문화적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창작자로서 관심 있는 주제는 이러한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어떠한 큰 이야기를 하기보다 개인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사회에 대한 이야기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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