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를 밟고 고독을 넘어
<아버지의 길> 스루단 고르보비치 감독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은 데뷔작 <빗나간 과녁>부터 전작 <트랩> <써클즈>까지, 정치적 혼란을 통과한 세르비아의 그림자를 카메라에 담아온 스루단 고르보비치 감독의 신작 <아버지의 길>이다.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의 주인공 니콜라는 아픈 아내, 불안한 고용 상황 등을 이유로 정부에 아이들을 빼앗긴다. 위탁가정에 맡겨진 두 남매를 다시 만나기 위해 걷고 또 걷는 남자의 이야기는 고르보비치 감독에게 “세르비아 버전의 <파리 텍사스>”로 다가왔다고 한다. 스루단 고르보비치 감독을 화상으로 만나 절실한 아버지이자 존엄한 개인으로서 행동한 니콜라의 여정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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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의해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게 된 주인공 니콜라의 실제 모델이 있다고 들었다. 그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의 어떤 점이 시선을 붙잡았는지 궁금하다.
니콜라의 모델이 된 사람을 신문기사로 처음 접했다. 그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세르비아의 시골에서 수도 베오그라드까지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읽고 흥미를 느껴 노동부 건물 앞에서 시위 중인 그를 찾아가 대화를 나눴다. 그의 이야기가 마치 빔 벤더스 감독 작품 <파리 텍사스>의 세르비아 버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처음부터 베오그라드까지 걸어갈 예정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되찾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가 그를 끝까지 걷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감명받아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사건과 인물에 바탕을 두기는 했지만, 영화의 대부분은 픽션이다.
베오그라드까지 가기 위해 니콜라가 지나는 자연의 풍광이 아름답고도 아득했다. 인물이 걸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숏이 많은데, 어떻게 찍고 싶었나.
첫째로 자연과 니콜라가 하나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전체적인 풍경 속에서 니콜라가 한 부분임을 말하고 싶었다. 둘째로 관객도 니콜라가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시간을 그대로 체험했으면 했다. 영화에서 니콜라는 5일 동안 걷는다. 그 시간과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이 여정 안에서 니콜라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배고파하는지 느끼게 하고 싶었다.
니콜라는 길 위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누군가는 그에게 음식을 건네고, 누군가는 차를 태워준다. 선의를 가진 타인들을 반복적으로 비춘 이유가 있다면.
니콜라가 걸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사실 그는 사람들보다도 자연이나 동물과 교감하는 것에 더 익숙한 특별한 인물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니콜라가 횡단하는 아름다운 대륙이 사람들에 의해 파괴된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시스템이 자연과 인간을 파괴했음에도 선의를 가진 좋은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특히 니콜라가 폐허에서 개를 만나 하룻밤을 함께하는 대목이 아련했다. 니콜라의 인간적 면모가 두드러지는 동시에 개의 죽음으로 비극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하는데.
그 장면에서 많은 관객이 눈물짓지 않을까 싶다. 개와 주인공은 무척 비슷한 위치에 있다. 둘은 사회에서 거부당하고 있는 외로운 존재들이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은 굉장한 비극을 안고 걸어가고 있지 않나. 그러나 개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가족과 헤어진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다. 개와 마주하고부터 감정이 표출되기 시작하고 완전히 무너지는 거다. 그 전까지 관객이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다가 그때서야 그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인간적인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됐으면 했다.
한편 니콜라가 사회복지센터와 엮이는 초반부, 중앙정부에 도착하는 후반부에서는 사회비판적 시선이 두드러진다. 소통이 되지 않는 부패한 센터장, 호의를 베푸는 듯 홍보목적에 충실한 차관 등의 모습에 실제 세르비아의 상황을 반영한 것인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조사해본 결과 실제로 세르비아의 작은 도시나 시골에는 영화처럼 부패한 공직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센터장을 악인으로 묘사했다. 사실 차관의 경우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다. (웃음) 니콜라의 상황이 해결되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문제에 임하는 태도가 얄팍할 뿐이다. 니콜라를 돕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와 함께 사진을 찍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홍보하려는 신세대 정치인의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
영화 공개 이후 세르비아에서도 반향이 있었다고. 관객 반응이 어땠나.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를 한 후 세르비아 국영방송국에서 영화를 TV로 방영했다. 록다운 기간이었기 때문에 시청률도 높았고 피드백도 활발했다. 부패한 관료주의가 우리 일상에 어떤 식으로 계속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실제 모델이 지금까지 6년째 아이들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 시스템의 불합리성에 대한 논쟁도 다시금 일었다.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많아지니 세르비아 정치권에서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세르비아 대표로 선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정치권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해 소란이 있기도 했다.
영화의 원제와 영제는 ‘아버지’를 뜻하지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아버지의 길>로 소개되었다. 영화를 보고나면 영화 속 아버지가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순례하는 듯해 적절한 번역 제목으로 느껴졌다. 감독이 생각하는 아버지, 부모의 자격이란 무엇인가.
이 영화 제목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많은 생각을 했다. 영화가 니콜라가 단순히 아버지로서 아이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가족도 되찾으려는 여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르비아의 많은 남성들은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겪으면서 일종의 패배감을 떠안은 역사가 있다. 그들의 부성, 남성성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나 또한 영화를 만들면서 아버지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나이는 있지만 아들이 이제 아홉 살이고, 아버지로서는 아직 젊다. (웃음) 아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 영화를 찍으며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답을 계속해서 찾아가는 중이다.
글 남선우·사진제공 마쟈 메디치